[내 마음속의 공간1번지] 14. 병산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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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거대한 공간에는 향기가 없다. 거대한 공간은 사람의 야코를 죽인다. 주눅 들게 겁준다. 그것은 빈 공간 그 자체의 크기만으로도 어떤 권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알맞게 작더라도 막 만든 새 공간 역시 향내는 나지 않는다. 코를 자극하는 건축 재료 냄새만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 사람과 시간이 때를 묻혀 나가노라면 향내가 조금씩 배게 된다. 그리고 세월의 때가 낄 때쯤부터 깊고 그윽한 공간의 향내가 우러나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오랜 세월이 도와서 완성시킨 이 땅 곳곳의 향내나는 공간을 사람들은 돈 들여 망가뜨리고 있다. 이를테면 그윽한 향기 가득하던 여러 절의 여러 공간에서는 수리한다면서 향내를 몰아냈다. 때 빼고 광내고 더 크게 하려고 덧붙이자마자 저 그윽하던 공간의 향내는 다 사라져 버린다.

해 묵은 향내를 감지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데 공들이고 정성을 바친다면 수리를 하더라도 해묵은 향내 얼마쯤은 아마도 남을 터인데. 산속의 유서 깊은 절들이 대개 그 모양이니 도시의 공간에서 향내 나기를 바랄 수 있을까?

더 크게 새로 지은 공간에 최신식의 집기들을 배치하고 값비싼 미술품들로 치장을 하고 거기다 그야말로 고급 향수를 뿌려두었다 하더라도 향내를 풍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몇 채 남지 않은 조선 때의 기와집들은 몇 채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개가 문화재 자료나 무슨 사적 몇 호라는, 나라에서 주는 벼슬을 받았다. 그 뒤엔 곧 이어 마땅한 순서로서 따라오는 돈과 그 돈을 집행하는 권력의 간섭을 피할 길이 없게 된다.

대개 '유구한 문화 전통' 과 '빛나는 조상들의 얼' 을 떠받들기 위해 집행하는 돈과 행사하는 권력으로 보수를 하게 마련이다.

그리하여 보다 돈 안 들게, 보다 빠르게, 그리고 보다 그럴싸한 무대장치처럼 보이도록 돈과 권력은 때 빼고 광내 놓고는 그보다 더 찬란하게 번쩍번쩍 빛나는 스테인리스 기둥에 스테인리스 판을 단 '올 스테인리스' 안내판을 건물 코앞에 바싹 세운 뒤에 떠난다. 다른 것은 모르지만, '스테인리스여 영원하라' 만은 분명하다.

그러면 그곳에서 '유구한 문화 전통과 빛나는 조상들의 얼' 이 내던 공간의 향내는 자취없이 사라져 버린다.

풍산에 있는 병산서원도 물론 여러 번 수리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건물은 뼈대가 워낙 확실한 데다 그다지 거칠게 손질하지 않았으므로 비교적 해묵은 공간의 향내를 아직은 간직하고 있다. 그 작은 마당, 입교당과 빼빼한 만대루 사이의 공간에는 아직까지 저 조선 때의 향내가 고여 있다.

그러나 한 발만 대문 밖으로 나서면 그 좋은 자연 경관에도 불구하고 여러 조잡한 건물들, 야한 간판들, 얼기설기 전깃줄을 늘어뜨리고 비틀거리는 수많은 시멘트 전봇대들이 풍기는 고약한 냄새들이 순식간에 덤벼든다.

그러나 옆문으로 나섰을 때 마주치는 검약하고 단순한 측간. 솔가지를 엮어서 그저 나선형으로 둘러쳐 가린, 문도 지붕도 없는 작은 그곳에선 향내가 난다.

병산서원은 얕은 등성이 너머의, 저 먼 나라 여왕이 납신 뒤로 '쑥밭' 이 되어버린 하회마을의 풍산 '유씨' 가문인 서애 유성룡이 1572년(선조 5년)에 세운 것으로, 굽이굽이 돌며 흐르는 낙동강가에 자리잡고 있다. 그 강 굽이를 마치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병산을 바라보는 얕은 산자락이다.

이 서원의 구조는 다른 서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대문(복례문)부터 만대루를 거쳐 중심 건물인 입교당까지는 거의 완전한 대칭 구조로 되어 있다. 다른 서원에 견주자면 다만 누각(만대루)이 좀 길며, 거기서는 굽이 돌며 흐르는 강과 그 너머의 병산 줄기가 한눈에 바라다 보인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만대루가 허세 부리지 않고 검약해 보이도록 지어졌다는 점이 다르다.

기 와집의 속성 중 하나는 안의 소박한 공간에 견주어 지붕을 중심으로 한 외모가 크게 보이도록 과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위세 당당하던 '유씨' 가문에서 실제 면적은 일곱 칸이나 되는데도 검약한 '미니멀' 같은 건물을 세운 것은 뜻밖이다. 병산 서원은 그러므로 외모의 허세는 거의 무시하고 안의 아늑한 공간과 그 공간에서 내다보는 바깥경치에 주안점을 두고 지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진은 병산서원의 중심 건물인 입교당 마루의 한 가운데서 찍은 것이다. 그래서 좌우가 대칭인 점이 한눈에 보인다. 그런데 검게 나온 입교당의 추녀 밑과 그 아래 마당 건너 좌우로 유연하게 긴 만대루 지붕 위쪽의 희게 보이는 공간 사이로, 보통 때는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삐딱하게 올라가면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병산의 능선이 보인다. 그 삐딱한 산줄기는 대칭을 이루는 인공의 공간 사이를 가로지르며 대칭을 깬다. '자연스러움이란 이런 것이야' 라는 듯이.

사진에는 그러나 병산의 능선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실비를 흘리는 자욱한 강 안개가 가렸을 때 찍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경이 생략된 만대루의 지붕은 더 단순해 보인다. 완만한 산줄기가 이루는 배경이 나오지 않아 허전하기도 하지만 공간이 확연하게 드러남으로 해서 시원해 보이기도 한다.

사 람은 작으며 조화 있는 공간에서 마음의 평정을 누리기가 쉽다. 대칭 구조가 이루는 균형감은 그 조화에서 첫째로 꼽을 항목이겠다. 대칭일지라도 그 구조가 너무나 커 한눈에 안 들어오면 사람들은 까닭도 모른 채 겁먹고 불안해 한다. 사람들은 불안해지면 거대한 공간에서 설령 향내가 난다 하더라도 감각기관이 얼떨떨해져서 맡을 수가 없다.

그렇게 하여 지배하려는 권력은 흔히 거대한 공간으로 된 공회당, 교회당, 그리고 백화점 같은 것들 속에 대중을 몰아 넣고 얼을 빼는 수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흔히 더 크고 더 새로운 공간을 탐낸다.

요즘 젊은이들의 몸이 두개는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길고 헐렁하게 큰 옷, 걸을 때마다 퍽퍽 소리 낼 수밖에 없는 큰 신발들도 따지자면 큰 공간을 차지하겠다는 속내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큰 차, 더 큰 TV… 마침내는 더 큰 무덤으로까지 무한정 뻗어나간다. 그런 것은 부일 뿐 아니라 권력의 한가지이므로 부와 권력은 언제나 짝지어 다니길 좋아한다.

나는 기껏 24×36㎜(35㎜ 필름의 규격)밖에 안되는 평면 속에 내가 바라본 세상의 요모조모를 저장한다.

그러나 그 작디 작은 평면은 큰 공간도 담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수히 연결될 수도 있다. 그 작은 평면 속에 알맞게 자리잡도록, 그 작은 공간에 익숙한 감각으로, 이 세상의 거대한 공간을 나는 겁 먹은 채로 늘 두리 두리 살핀다. 나 같은 사진가의 공간인식이란 마침내 현실인식과 직결되어야 하므로.

향내 나는 공간은 마음을 편하게 한다. 병산서원처럼. 공간의 향내는 눈으로 맡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마음을 다스려야 할 번잡한 일이 있을 때, 그곳에 마치 도둑처럼 발소리를 죽이고 잠입해 입교당의 마루 한가운데 걸터앉았다가 오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 조선의 공간에 온 나라의 '현실' 이 몰려들어 더는 고요한 날이 없기 때문에.

강운구 <사진작가>

<약력>

▶1941년 경북 문경 출생

▶경북대학 영문과 졸업

▶조선일보 ·동앙일보 사진부 기자

▶75년 언론사태로 해직

▶사진집‘내설악 너와집’‘경주 남산’‘우연 또는 필연’‘모든 앙금’‘마을 삼부작’.역사안내서‘사진과 함께 읽는 삼국유사’‘능으로 가는 길’(이상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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