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장관이 경제연구소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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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엊그제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 주재하에 경제장관 간담회를 열어 경제상황을 면밀히 살핀 후 6월 중 종합경제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수출감소와 물가상승 등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와 주가.원화값.채권값이 동반 하락하는 '3중(重)3저(低)' 의 경제난국 속에 정부가 간담회를 열어 정책방향을 논의.조율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또 간담회에서 金대통령은 "하면 된다" 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이는 침체된 기업 분위기를 띄우고 기업의 자신감을 고취시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만의 하나라도 "정부가 밀어붙여야 한다" 라는 의미로 사용했다면 옳은 방향이 아니라고 본다. 대신 '하면 된다' 라는 말이 여전히 중심을 못잡고 어정쩡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는 현 경제팀의 자세를 비판.독려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정부는 그동안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경제여건의 변화에 책임을 돌리고 가급적 문제를 덮으려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가령 "미국 경제의 경착륙시 경제성장률은 4% 이하" "환율 불안시 물가 4% 유지 힘들 것" 등의 공공연한 전망은 경제연구소장이 할 얘기지, 경제장관이 할 얘기는 아니다.

경제장관의 말 한마디는 경제주체들이 경제행위를 전면 수정케 할 정도의 무게를 갖는다. 경제장관은 현재의 경제상황이 어떻고, 향후 경제상황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를 시시콜콜 함부로 얘기해선 안된다.

경제상황의 변화를 면밀히 검토하고 정책변화가 불가피할 경우 이를 정책에 반영하면 된다. '1분기 중 경기 저점' 공언과 4대 그룹 출자전환은 없다고 했다가 지난달 출자전환한 현대건설과 대우차의 한달 내 매각 등의 공언은 오히려 정부 신뢰만 떨어뜨린 실언이었을 뿐이다.

정부는 중심을 잡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구조조정과 경기부양, 경기회복과 물가안정 등 상반된 정책목표를 놓고 우왕좌왕할 게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말이 아니라 정책으로 나타난, 분명하고 일관된 시그널을 정부에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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