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믿음의 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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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현직 교사들이 주축이 돼 이끌어 가는 '좋은 교사 운동' 이 최근 가정방문 캠페인을 전개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교사와 학생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학교와 가정 사이에 불신이 쌓여 있는 현실을 타개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눈길 끈 가정방문 캠페인

가정방문이라 - .

우리 집에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왔던 때가 언제였더라? 나도 모르게 아련한 기억을 더듬다가 단발머리를 한 교복차림의 내 모습이 낡은 영화필름처럼 떠올랐다.

집안 형편이 드러나는 것이 그저 창피하기만 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던 것 하며 혹시 나에 대해 좋지 않은 얘기라도 나올까봐 전전긍긍했던 기억들이 30여년의 세월을 훌쩍 건너 어제의 일처럼 되살아났다.

모든 것을 털어 내보인 때문이었을까. 멀게만 느껴졌던 담임이 그날 이후 내 마음 속에서 살가운 존재로 바뀌었던 기억이 새롭다.

가정방문의 추억은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촌지 등 가정방문의 폐해가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아 더 이상 교사들이 학생의 집을 방문하지 못하도록 당국이 금지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한두사람만 모여도 교육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부유층은 부유층대로, 서민층은 서민층대로, 수재는 수재대로, 둔재는 둔재대로 교육에 불만을 쏟아낸다.

유아교육에서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명의들이 나서서 수없이 많은 처방전을 발행했건만 '백약(百藥)이 무효(無效)' 이니 우리 교육이 중병에 걸린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하기야 어느 나라보다 높은 교육열을 가진 부모와 철저한 학력 위주의 사회, 이 속에서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산술적 평등주의' 가치관까지 한데 뒤섞이니 어떤 치료책도 정답이 되지 못할 수밖에. 정책이 갈피를 못잡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틈을 비집고 '학원 만능' 만 기승을 부리니 교사들이 좌절의 늪 속에 빠지는 것도 탓할 일은 못된다.

그러나 절망의 맨 밑바닥이야말로 희망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믿음은 그 희망의 단초가 된다. 교육정책-교사-학부모-학생의 네 톱니바퀴가 조화롭게 맞물려 돌아가려면 학교와 가정간의 신뢰가 우선이다. 하지만 우리네 학교와 가정 사이엔 믿음 대신 의심이 가득 차 있다. 불신을 신뢰로 바꾸는 데 너나 없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현대사회의 패러다임은 공급자에서 소비자 위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공교육은 여전히 공급자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학교가 권위의 탈을 벗어버리고 학생과 학부모의 시각에서 거리 좁히기에 나서면 어떨까. 학부모의 참여를 전제로 한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부터 발상의 전환을 꾀해보는 것이다.

예컨대 평일에 치러지는 운동회나 학부모 수업참관을 일요일로 바꾸고 이튿날인 월요일은 임시휴일로 정해 일요근무를 한 교사들을 쉬게 하는 것이다. 사랑스런 자녀의 학교생활이 궁금해도 생업이 발목을 붙들고 있어 학교와는 아예 담을 쌓을 수밖에 없는 아버지도 일요일에 학교방문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볍게 교문을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맞벌이에 쫓겨 '자녀의 단 한번의 소원' 을 들어주지 못하는 어머니도 이 날은 죄책감 대신 가슴 저리는 행복을 맛볼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학교는 더 이상 교육과정 이수를 위한 '그들만의 잔치' 를 벌이지 않을 수 있을 게 아닌가.

***학교행사 발상의 전환을

혜성같이 나타난 손오공이 현란하게 여의봉을 돌려 반세기 동안 풀지 못한 교육문제를 순식간에 해결해줄 것을 바라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하지 않던가. 작은 물줄기가 마침내 둑을 무너뜨리듯 작은 배려와 감사한 마음들이 쌓여 믿음의 나무가 무성해지면 그 때 비로소 우리는 교육문제의 첫 단추를 채우게 될지 모른다.

사족(蛇足) 하나 - .

내가 가정방문을 다시 접한 것은 학부모가 된 후 일본에서였다. 비가 내려 쌀쌀한 가운데 흰색 드레스셔츠 차림으로 들른 담임교사는 인사치레로 내놓은 과일마저도 입에 대지 않았다.

촌지 등 불필요한 오해가 없게끔 아예 주머니 없는 옷차림에 일절 음식접대를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얘길 훗날 이웃에게 전해 듣고서야 비로소 고개가 끄덕거려졌다. 만약 우리도 가정방문 전면금지 대신 폐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구했더라면?

홍은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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