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곡 만들고 음반제작까지 혼자 힘으로 해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 "사진 찍는 것도 힘들죠? 웃는 연습 많이 해야돼요" 벌써 2집째라 혼자 앨범 낸 경력에서 한참 앞서는 강태웅(右)씨가 최형배씨에게 조언을 하며 활짝 웃는다. 최씨도 카메라 앞에 선 시간이 지날수록 표정이 점점 밝아졌다. 강씨는 "음악을 만드는 것보다 음반을 홍보하기 위해 혼자 뛰어다니는 게 더 힘들다" 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대형 기획사의 오디션을 통과한 뒤 피나는 훈련을 거친다. 기획사는 소비자의 트렌드에 맞는 음악을 작곡.작사가에게 받아낸다. 매니저가 방송국.신문사를 뛰어 다니며 음반을 뿌린다. TV 이곳 저곳에 얼굴을 내민 만큼 음악이 알려진다….'

음반 하나를 만들어 대중의 귀에까지 닿도록 하는 힘들고도 전형적인 과정이다. 이 모든 일을 용감하게도 혼자 해낸 두 사람, 가수 강태웅씨와 직장인 최형배씨를 함께 만났다. 강씨는 무명가수시절을 거쳐 혼자 2집까지 냈다. 최씨는 직장 생활을 병행하며 오랜 꿈이었던 1집 음반 'SAL(살)'을 제작했다.

두 사람은 본지 인터뷰 자리에서 서로를 처음 만났다. 서먹할 만도 한데 자연스레 대화가 오갔다.

"음반 홍보는 잘 되나요?"(최형배)

"제 곡이 벅스뮤직 TOP100에서 하나 벗어난 101위예요. 지난주엔 라디오 40회 정도 탔어요."(강태웅)

"우와~. 어떻게 하신 거예요?"(최)

"하루에 방송국을 세번씩 돌아야 해요. 시간대별로 담당 PD가 바뀌거든요. 지방 방송국에는 우편으로 CD를 보내요. 지방은 특히 신청곡에 못 들어가면 방송 타기 힘든데, 제 곡을 신청하는 분들이 있나 봐요. 한 달에 15만원 내면 라디오 방송 횟수 체크해주는 회사도 있어요. 물론 저는 아는 분이 가르쳐주지만…"(강)

"저는 라디오 딱 한 번 탔는데…. 지난주 아는 분 소개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어요. 팝 소개해주면서 제 음악도 한 곡 끼워 틀었죠. 연령대 가리지 않고 좋다는 반응이 많이 와서 기분좋았어요. 음반을 내고 보니 인맥 없이 홍보하기가 너무 힘든 것 같네요"(최)

혼자서 음반을 낸 공통점 때문에 서로 잘 통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은 극과 극을 달린다.

강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고 머슴살이까지 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러다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무작정 상경했다. 공장 노동자.초콜릿 팔이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며 틈 나는 대로 노래 연습을 했다. 초등학교도 졸업 못한 학력으로는 가수가 못 되리란 생각에 검정고시로 고교 졸업장을 따고 명지실업전문대에 들어가 작곡 공부도 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1998년 어렵사리 1집을 냈다. 작사.작곡.노래.프로듀싱 등 음반 제작의 모든 과정을 혼자 해냈다. 카페 등지에서 공연을 하며 음반을 팔다 2000년부터는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홍보를 했다. '이별하지 않은 이별'이란 노래로 이름을 알렸고 SBS '인생대역전' 주제곡을 짓기도 했다. 그리고 6년 만에 다시 혼자 힘으로 2집을 낸 것이다. 강씨의 노래는 편안한 발라드. 세련미는 없지만 투박하면서도 진솔한 그의 삶을 그대로 빼닮았다.

최씨는 고교시절부터 밴드에서 기타를 쳤다. 재수 시절, 고려대 재학 시절에도 음악을 놓지 않았다. 남의 음악 카피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대학 2학년 때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강한 반대 때문에, 또 음악에만 인생을 걸 용기는 없어 평범한 직장인이 됐다. 그래도 놓지 못한 끈. 직장생활 2년 만에 데모 음반을 만들었다. 데모 음반을 만들다 만난 덕에 인연으로 금호문화재단으로 이직해 클래식 공연 기획을 맡았다. 2002년부터는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 비서로 일하고 있다. 정규 음반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건 지난해 4월. 20대에 만들어놓은 곡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발표하고 싶어서였다. 6개월 만에 해낼 계획이었지만 직장생활을 병행하다 보니 18개월이 걸렸다. 직접 부른 노래는 두 곡. 나머지는 객원 가수를 동원했다. 그가 원하는 느낌을 더 잘 표현할 목소리를 찾아서였다. 그의 음악은 팝.재즈.보사노바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간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늘 딴 곳을 향하며 갈팡질팡하는 생활인의 고민과 예술인의 감성이 묻어 있다.

이들이 힘들어도 음반을 내는 이유는 뭘까.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자유롭고 싶었어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내 마음을 존중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 내 색깔과 생각을 표현하는 게 행복해요."(강)

"죄수가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숟가락으로 땅굴을 파는 기분이었어요. 신기하게도 그러다 보니 어느새 내 꿈에 조금 가까워져 있더군요."(최)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사진=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