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의 차이노믹스] 그 많던 중국 콩은 다 어디 갔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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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농업 대국 중국에서도 특히 헤이룽장(黑龍江)성은 ‘농업 대성(大省)’으로 불린다. 광활하고 비옥한 흑토 지대가 중국의 최대 곡창 지대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이 일대에선 중국이 본산지인 대두(콩)가 가장 많이 생산된다. 중국에서 대두를 재배한 역사는 5000년이 넘는다. 대두는 예부터 차·비단과 함께 중국의 대표적 수출품이었다.

그런데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1년을 전후해 대두 산업에 급격한 변화가 나타났다. 중국 농가가 생산한 대두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대두 산업이 고사 위기에 내몰린 것이다. 브라질에서 수입한 대두의 t당 가격은 3400위안(약 56만원)인 데 비해 중국 국내산 대두는 3600∼3700위안이다.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신경보(新京報)에 따르면 헤이룽장성에 소재한 100여 개 대두 가공 기업 중 70%가량이 연초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대두 가공 공장 관계자는 “내륙에 위치해 운송비가 많이 드는 공장에서 비싼 국내산을 원료로 쓰다 보니 1t의 콩기름을 생산할 때마다 70위안(약 1만1900원)의 손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1996년까지만 해도 중국에선 영세 농가가 국내 대두 수요(1549만t)의 86%를 감당했다. 수입 비중은 14%에 그쳤다.

그러나 WTO 가입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대규모 영농으로 가격이 저렴한 미국·브라질 등 외국산 대두 수입이 급증했다. 지난해엔 국내 수요(5400만t)의 78%를 수입에 의존했다. 중국은 세계 1위 대두 수입국이 됐다. 반면 96년 1300만t 규모였던 국내산 대두의 공급 능력은 2009년 오히려 1150만t으로 줄어들었다.

일부에선 카길 등 다국적 곡물 메이저의 시장가격 조작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음모론적 시각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비해 국내 농업의 구조조정과 대형화를 미리 추진하지 않았던 게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국내 산업 기반이 취약해지자 중국 대두 농가와 가공 기업들은 뒤늦게 ‘대형화’를 외치며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보조금으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실 지금까지 중국의 저가 농산물은 우리 농가엔 위협이 돼 왔다. 그러나 똑같은 문제가 이젠 중국 농가를 괴롭히고 있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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