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픽업 툰드라도 리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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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량 리콜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반전을 시도하던 도요타가 잇따른 악재에 다시 발목이 잡혔다. 지난달 이후 마무리되는 듯하던 리콜 사태가 픽업트럭 툰드라로 다시 번진 것이다.

도요타는 9일(현지시간) 2000~2003년형 툰드라 전량을 리콜한다고 발표했다. 대상이 몇 대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앞서 8일엔 캘리포니아주에서 미국 언론을 상대로 전자장치에 이상이 없다는 시연회를 벌인 지 몇 시간 만에 프리우스가 다시 급가속 사고를 일으켰다. 이에 따라 앞으로 닥쳐올 리콜과 소송·판촉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AP통신이 전했다.

툰드라는 도요타가 북미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전략 모델이다. 제너럴모터스(GM)·포드가 장악하고 있던 픽업트럭 시장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2007년엔 디자인을 확 바꾸며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차량 밑바닥 프레임이 제설작업 때 뿌리는 나트륨 성분에 취약했다. 특히 제설제를 많이 뿌리는 추운 지방에선 치명적이었다. 심지어 스페어 타이어나 연료통이 떨어져 나가 뒤따르는 차량을 덮치거나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도요타는 지난해 11월 이를 시정하기 위해 11만 대의 툰드라를 리콜했다. 하지만 이것도 모자라 이번엔 2000~2003년 생산 차량 전체로 리콜을 확대한 것이다.

8일 일어난 프리우스 급가속 사고도 도요타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이날 사고를 낸 2008년 프리우스는 바닥 매트 리콜 대상이었다. 운전자는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매트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하면서 “시동을 끄는 스위치를 눌러도 차가 멈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미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사고 즉시 두 명의 직원을 현지로 보내 조사에 나섰다.

리콜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도요타가 물어야 할 비용도 갈수록 불어나고 있다. 도요타 측은 처음엔 리콜 수습에 들어갈 비용을 1800억 엔(약 2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한 바 있다. 그러나 WSJ는 JP모건을 인용해 수습 비용이 5000억 엔(약 5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건은 이를 근거로 4월 1일부터 시작되는 이번 회계연도에 도요타의 영업이익을 당초 7600억 엔에서 5400억 엔으로 낮췄다.

또 AP통신은 중고차 값 하락을 보상하라는 기존 도요타 고객의 집단 소송으로도 최소 30억 달러를 물어줘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동안 도요타를 상대로 제기한 89건 이상의 집단소송 판례와 전문가 의견을 종합한 결과 그렇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번 리콜 사태로 도요타가 자금난에 빠질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도요타는 장부상으로만 290억 달러의 현금을 쌓아두고 있다.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까지 합치면 1000억 달러가 넘는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장기적인 매출 부진으로 이어지면 사정은 달라진다. 수익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도요타가 800만 대 이상의 리콜 사태에도 사상 최대 인센티브를 내걸고 판촉 세일에 나선 것도 이를 의식해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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