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대머리에 희망 심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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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새 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해 뛰고 있다. 이들의 노력이 모여 지역사회가 바뀌고 우리 사회도 한걸음 나아가게 된다.

지역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가는 사람들의 일과 삶을 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만지면 빠질까, 불면 날아갈까. 먹고, 바르고, 감고, 두드리고…. '

머리카락 살리기에 노심초사하는 대머리들의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구원의 과학자가 있다.

경북대 의대 김정철(金政澈.44.의학박사)교수. 그는 '대머리 박사' 다. 면역학교실 주임교수지만 모발이식 전문가로 더 유명하다.

金교수는 1992년 뒷머리에 남은 머리카락을 떼내 빠진 부위에 심는 '모낭군(群)이식술' 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 시술로 그는 국제 모발관련학회에서 주목받는 학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정작 그는 대머리가 아니다.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가발을 쓴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머리숱이 많다.

생화학 박사인 그가 왜 대머리 치료에 매달렸을까.

金교수의 대답은 간단하다. "틈새시장을 노린 것이지요. " 그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암.에이즈 등 난치병 정복에 매달리고 있어 다른 분야를 찾은 끝에 '대머리' 를 택한 것" 이라고 말했다.

金교수가 '털' 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82년부터.

대학원때 지도교수와 친분이 있던 일본의 암내제거수술 전문가를 만나면서 겨드랑이 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군복무 시절 돼지털이 한쪽은 검고 한쪽은 누런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검은 털을 뽑아 누런색 털이 있는 부분에 심어보았지만 별 변화가 없었다.

그의 실험은 이어졌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모낭군이식술이다.

이 시술은 당시 선진국에서 유행하던 '펀치법' (머리카락을 피부와 함께 떼낸 뒤 머리가 없는 곳의 피부를 잘라내고 끼워넣는 수술법)을 대체하며 눈길을 끌었다.

모낭군이식술은 펀치법처럼 큰 상처를 주지 않고 생장력도 좋아 지금은 앞선 수술법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 장단지에 뒷머리카락을 뽑아 심기도 했다.

자신이 개발한 수술법을 설명할 땐 다리를 걷어 보여준다. 다리의 머리카락은 18가닥. 10년 가까이 됐지만 빠지지 않고 잘 자라 길이가 10㎝남짓이다.

그는 이 수술법으로 국제모발외과학회의 제1회 백금모근상과 국제모발연구회 금상 등 각종 상을 받았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96년 경북대병원에 모발이식센터를 설립했다.

그동안 이곳에서 수술받은 사람은 1천여명. 2004년 2월까지 수술 예약자가 대기중이다.

경북대 박찬석(朴贊石)총장도 99년 앞머리를 심었다.

앞 머리카락이 거의 없던 朴총장은 수술후 모습이 완전히 바뀌었다. "내가 앞장서 우리 대학병원을 홍보해야 하지 않느냐" 며 자청해 이뤄진 것이었다.

金교수는 경북고와 경북대 의대를 거쳐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대구 토종' 학자다.

외국 물(?)은 머리카락에 대한 연구방향을 잡기 위해 93년 미국의 존스홉킨스 의대에서 2개월간 공부한 게 전부다.

그는 지난해 2월 '트리코진' 이란 벤처기업도 설립했다.

모근을 배양하고, 수염을 머리카락으로 바꿔 식모용 머리카락 생산을 상업화하기 위해서다.

또 흰머리를 검은 머리로 바꾸고, 여성의 털을 없애는 것도 함께 연구한다.

"머리 앞 부분이나 중간 부분은 빠지지만 뒷 머리카락은 빠지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고 머리카락.수염의 유전자 8천개를 분석했습니다. 이것이 벤처기업의 자산이지요. "

金교수는 "이 작업이 성공하면 수십조원에 이르는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 며 자신감을 보였다.

홍권삼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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