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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GMO·방사선조사 표시 … 밀어붙일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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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화지방·트랜스지방·콜레스테롤·나트륨 등 생산자 입장에선 되도록 감추고 싶은 정보도 제품에 반드시 표시하도록 했다. 특정 식품을 먹으면 두드러기 등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사람도 제품 라벨만 꼼꼼히 살피면 피해야 할 식품·성분이 포함돼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기자는 이런 일련의 표시 의무화 정책이 소비자의 알 권리와 국민 건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이런 표시제가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뿌리를 내린 것은 유통기한의 의미, 트랜스지방의 해악 등이 국민에게 널리 알려진 덕이 크다.

그러나 유전자변형(GMO)과 방사선조사식품에 대한 표시제를 강화하려는 정부의 조치에 대해선 할 말이 있다.

무엇보다 다른 표시제와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예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기른 상추엔 ‘유기농’이란 표시가 붙어 있다. 가격도 일반 상추의 두서너 배다. 소비자의 알 권리를 우선한다면 유기농 상추가 아닌 일반 상추는 ‘농약 상추’나 ‘비료 상추’라고 표시하도록 해야 옳다. 동물용 항생제를 일절 쓰지 않고 사육한 소의 고기엔 ‘유기 축산물’이란 표시가 붙는다. 만약 소를 기를 때 동물용 항생제를 사용했다면 ‘항생제 쇠고기’라고 표시해야 소비자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농약 상추’ ‘항생제 쇠고기’라는 표시가 붙은 제품을 구입할 소비자는 극히 드물 것이다. 이것이 표시제의 위력이다.

GMO와 방사선조사식품의 안전성에 대해 일부 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GMO의 안전을 의심한 유럽연합(EU)의 수많은 과학자가 GMO의 위험성을 증명하지 못했다. 방사선조사식품에 대해선 세계보건기구(WHO)·국제식량농업기구(FAO)·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인 기관들이 이구동성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와는 달리 잔류 농약·항생제의 유해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이처럼 유해성이 분명한 농약 등에 대해선 표시를 ‘면제’해주면서, 유해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는 GMO나 방사선조사식품에 대한 표시제를 확대하는 것은 형평성이 결여된 조치다.

GMO나 방사선조사식품 표시제를 강화하더라도 소비자에 대한 교육·홍보가 선행돼야 한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GMO라고 하면 먼저 ‘조작’을 연상하고 ‘방사선조사식품=방사능 오염식품’으로 오인한다.

표시제 확대는 관련 식품과 기술·산업에 대한 사실상의 ‘사형 선고’가 될 수 있다. GMO나 방사선조사는 소비자가 공부하고 위험성·경제성·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측면을 따져봐야 자신의 이익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사안이다. 정부도 표시제 뒤에 숨지 말고 유해성 여부를 더 확실하게 가려줄 책임이 있다. 전문가들 역시 첨예하게 엇갈린 문제를 ‘표시를 보고 알아서 선택하라’며 소비자에게 떠넘겨선 안 된다.

식품안전정책위원회 같은 곳에서 GMO나 방사선조사식품이란 용어를 소비자가 어떤 선입견을 갖지 않도록 중립적 용어로 통일시켜 줄 것을 주문해 본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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