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신간 리뷰] '현실속의 철학, 철학 속의 현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문화의 기초인 인문학이 황폐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한켠에서 그 대안으로 우리의 현실에 바탕을 둔 철학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소장 철학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이땅에서 철학하기' 의 움직임이다. 이런 가운데 근대 한국 철학계의 큰 이름 열암 박종홍(1903~1976)전 서울대 교수를 비판적으로 조명한 책이 나와 주목을 끈다.

신간의 저자인 경북대 철학과 김석수 교수는 "열암을 우상화하거나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현실을 중시한 그의 선구적 업적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는데서부터 우리 철학을 모색해가야 한다" 고 말한다.

기실 누구나 열암을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철학자로 평가하면서도 그의 사후 20년이 넘도록 그에 대한 본격 비평서도 거의 없는 우리의 현실을 고려할 때 신간은 이땅에서 철학하기의 초석을 쌓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열암은 누구보다도 철학과 현실의 연관성 그리고 민족주의를 강조한 사람이었다. 일제시대에는 마르크시즘과 실존주의를 접목시키면서 저항적 민족주의를 모색하였고, 해방 이후엔 실용주의와 실존주의를 종합시켜 건설적 민족주의를 주창하였다.

모두 시대의 현실에 맞춘 철학적 고민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저자도 인정하듯이 서양철학을 어떻게 주체적으로 수용할까를 고민하며 동서양 철학의 접목을 시도한 것은 오늘날의 화두이기도 한 전통과 현대의 융합을 위한 선구적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열암에겐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논란이 있다. 그가 왜 박정희정권의 유신체제를 정당화하는데 참여했는가 하는 점이다.

독일의 대표적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나치정권에 참여한 사실이 논란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열암이 1934년에 쓴 '현대 철학의 동향' (매일신보에 1월 1~6일 6회 연재)에서 하이데거나 니체의 철학을 나치즘에 동조한 철학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이다(민음사판 『박종홍전집』1권 3백64쪽).

정치적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도 있는 이 점을 저자는 열암의 철학이 성급하게 현실에 철학을 접목시키려 했기 때문에 일관성을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현실과 일정한 비판적 반성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철학자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까마득한 후배인 저자가 1세대 철학자의 대표격인 열암의 철학을 비판한다는 것은 기실 학맥과 인맥으로 얽혀있는 우리 학계의 현실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수입한 철학을 이식하기 바빴던 과거를 반성하면서 우리의 철학자에게서부터 이땅의 철학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배영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