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아 강소기업에 배운다] 3. 금속 분말사출성형 업체 싱가포르 AMT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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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 싱가포르의 AMT에서 한 직원이 이 회사가 독자 개발한 금속 분말 사출성형 4단계 공정 과정을 통해 완성된 고압가스 밸브를 검사하고 있다.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미국의 한 펌프 회사는 2000년 이전까지 진공펌프에 들어가는 한가지 핵심 부품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크기는 주먹만 해도 모양이 복잡해 하나의 부품으로 만들지 못하고, 네 가지를 따로 따로 만든 뒤 용접해 한 덩어리로 붙여써야 했다.

금속분말사출성형 업체인 싱가포르의 AMT(Advanced Materials Technologies)가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 어떤 업체도 제작하지 못했던 이 부품을 붕어빵 찍듯 성형 틀을 이용해 하나의 부품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네 가지 부품을 하나로 만든 이 진공펌프용 부품으로 AMT는 2000년 미국 금속분말산업협회가 주는 그랜드상을 받았다. 만들려는 부품의 본을 뜬 뒤 그곳에 극미세 금속분말을 꽉 눌러 넣어 섭씨 1200도의 고온으로 굳히는 금속분말사출성형이라는 방법을 사용한 것이다.

주물처럼 거푸집에 끓는 금속 용액을 부어 넣는 것은 비슷하지만 끓는 금속 대신 미세 분말을 채운 뒤 구워내는 것이 다르다. 이는 아주 복잡한 모양의 부품도 손쉽게 제작할 수 있는 신기술이다.

AMT 예오 티 치앙 사장은 "세모.네모, 구멍 뚫린 것, 쥐굴처럼 입구는 좁은 데 속이 더 넓게 비어 있는 모양 등 형태가 복잡할수록 우리 기술이 더 빛난다"며 "미.일 등 전자제품이나 기계 제품 업체들이 자신들이 설계한 모양의 부품을 만들어줄 회사를 찾다 못찾으면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도 못 만든다고 하면 포기하고, 부품의 설계를 변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AMT는 '소형 금속 부품 제조의 마술손'이라고도 불린다.

AMT가 만드는 부품 중 휴대전화용 경첩이 있다. 휴대전화를 접었다 폈다 할 수 있게 해주는 부분이다. 일반인들이 보면 단순한 부품으로 보이지만 AMT가 만들지 않으면 당장 생산을 중단해야 할 휴대전화 모델이 꽤 된다. 수십만번 접었다 폈다를 반복할 수 있을 만큼 강도가 높아야 하고, 속 모양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AMT는 1990년 출범했다. 종업원은 100명, 지난해 매출은 3100만 싱가포르달러(약 217억원)에 불과한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어른 주먹만한 크기 이하의 소형 정밀 부품 제조에서는 세계에서 따라올 기업을 찾기 어렵다. 연간 생산하는 부품은 최대 1000만개(200t)에 이른다. 부품 용도도 반도체.휴대전화.캠코더.노트북컴퓨터.의료용품 등 다양하다.

예오 티 치앙 사장은 "90년 모기업인 싱가포르테크놀로지가 박사급 인력 5명으로 기술개발단을 만들어 미국.유럽.아시아 등을 대상으로 10년 뒤 부상할 신기술을 물색한 결과 분말사출성형기술이 꼽혔으며,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런 뒤 기술을 닦아 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제품 생산에 나섰다는 것이다. 10년 앞을 보고 시작한 것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게 된 셈이다. 예오 티 치앙 사장은 "어떤 형태의 부품도 0.1~250g 이하로 제작할 수 있다"며 "경쟁업체들은 0.1g으로 만들 수 있는 작은 사이즈는 제작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텅스텐.스테인리스 등 금속의 종류를 가리지 않으며, 금속 분말을 사용하지만 큰 덩어리로 있을 때의 금속 강도에 버금갈 정도의 부품을 만드는 것이 이 회사의 노하우다.

기존 금속으로 부품을 만드는 방법은 주물이나 분말야금.선반으로 깎기 등이 있다. 그러나 소형 부품에서는 금속분말사출성형 기법만이 금속 성질의 변형 없이 높은 강도와 내구성을 자랑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주물은 커다란 부품을 만드는 데 적합하지만 녹는 온도가 높은 금속은 사용하기 어렵다. 선반으로 깎는 것은 단순한 모양이어야 가능하다. 분말 야금은 금속 분말을 사용하긴 하지만 강도가 약하다는 흠이 있다.

AMT가 93년 개발한 금속분말사출성형기술은 미국.독일.일본.캐나다.한국 등 12여 개국에서 25개의 특허를 받았다. 95년부터 시장에 이 기술을 사용한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고, 99년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AMT보다 한 발 늦게 90년대 중반 설립된 미국의 AFT 키네틱스, 일본의 인젝스 시티즌 등은 AMT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는 비슷한 성능의 부품을 만들기 어렵다. AMT 특허 기술이 거의 기초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오 티 치앙 사장은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경쟁사가 우수한 연구인력을 스카우트해 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IBM.삼성전자.LG전자.모토로라 등 전자제품 업체부터 에머슨이나 GM 같은 의료용품 회사나 자동차 업체가 주요 고객이다.

◆ 특별취재팀:글=박방주 전문기자(팀장), 최지영.심재우.장정훈 기자
사진=신동연.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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