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박수근기념관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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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0세기 우리나라 최고의 화가 중 한 분인 박수근(朴壽根 : 1912~1965)화백의 기념관이 마침내 그의 생가터에 세워지게 됐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아름다운 봉화산을 훤히 내다보는 넓은 들판 한쪽 언덕받이에 건평 1백평 규모의 아담한 기념관이 내년 3월 개관을 목표로 지금 설계에 들어가 있다.

규모로 보자면 지방의 작은 미술관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의의를 본다면 이처럼 자랑스럽고 가슴 뿌듯한 경사가 없다.

돌이켜 보건대 우리는 지난 세월 조상들의 위업을 제대로 기릴줄 몰랐다.

파리 교외 오베르에 있는 반 고흐의 무덤과 작업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미술관, 홋카이도(北海島) 곳곳에 있는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의 유적을 보면 부러움과 죄스러움이 동시에 일어나곤 한다.

그런 중 양구군청이 앞장 서서 박수근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기쁨을 넘어 하나의 놀라움으로 받아들여진다. 강원도 양구군은 휴전선을 머리에 이고 있는 군사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지방자치단체로 현재 2만4천명에 불과하다.

예산 역시 전국 기초 지자체 중 가장 적은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구군은 자체예산 10억원을 책정해 박수근기념관을 계획하고 5천여평의 부지를 매입하고 강원도출신 화가 정탁영.함섭.홍석창 등 미술계 인사들로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이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 내년3월 고향 楊口에 문열어

박수근기념관을 건립하려는 양구군민과 군청의 의지는 대단히 확고하다. 어느 면으로 보나 박수근은 양구의 자랑이고 희망이 아닐 수 없다. 학력이라곤 양구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인 이 가난한 산골 소년이 마침내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성장한 것이었다. 그는 가난의 세월 속에서도 착하게만 살아가는 서민의 소박한 삶을 사랑의 시각으로 화폭에 담아냈다. 화강암 마티에르를 느끼게 하는 거친 화면에 장바구니를 이고 가는 여인,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벌거벗은 나목(裸木)을 마치 바위 위에 마애불을 새기듯 강한 선묘(線描)로 고착시켜 놓았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서민의 성화(聖畵)처럼 부동의 인간애를 보여주며 가장 한국적인 화가로 추앙받게 된 것이다.

*** 중앙정부서 예산지원 배려를

박수근기념관은 건축계에서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안할 얘기로 지방의 작은 군청에서 벌이는 이런 소규모 미술관은 촌스럽기 그지없거나 무뚝뚝한 관제 건물이 하나 들어서기 십상이다.

그러나 양구군청과 박수근기념관 추진위원회는 한국종합예술학교의 김종규, 이로재의 김영준, 메타건축의 이종호 등 유능한 3인의 중견 건축가에게 지정공모하는 방식을 취했다.

그 결과 이종호의 안을 채택하고 지금은 실시설계에 들어간 것이다.

이렇게 박수근기념관 건립안이 확정되면서 유족인 맏딸 박인숙씨는 박수근 화백이 사용하던 안경.연적 등 유품을 양구군청에 전달했고, 포천에 있는 당신의 묘소를 생가 뒷동산으로 이장할 뜻을 밝혔다.

갤러리현대 박명자 사장은 박수근의 판화 '농악' 을 기증했고, 캐나다에 있는 교포 김선남씨는 자신의 소장품 두점을 영구전시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박수근을 존경하는 화가 58명이 자신들의 작품을 이미 기념관에 기증했다. 이에 정부에서도 4억원, 강원도청에서도 2억원을 보조비로 내놓아 박수근기념관은 작품과 자료구입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박수근기념관의 성공 여부는 사실상 이제부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박수근의 유작은 매우 드물고 호당 1억원을 호가하는 고액이다.

가난한 양구군청으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기념관을 제대로 운영하자면 전문학예원이 최소 두명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 행정편제상 그런 직급도 없고 그런 인력을 쓸 예산도 없다. 박수근기념관은 결코 양구군청만의 일일 수 없다. 20세기 우리 미술사에 박수근이라는 화가가 없었다면 그 얼마나 허전했겠는가. 정부의 각별한 관심과 배려로 모처럼 일어난 이 보람 있는 일이 멋지게 성공했으면 정말로 좋겠다.

兪弘濬(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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