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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꾼들도 '위헌'에 물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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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 수도권에서 땅 매매로 돈을 번 김모씨. 지난 7월 초 충북 청원군 부용면의 땅 1300평을 평당 59만원에 샀으나 위헌 결정 이후 평당 40만원 밑으로 곤두박질했다. 이 땅은 올해만 주인이 두 차례 바뀌어 연초 평당 12만원에서 네 배나 치솟은 상태였다. 그동안 땅으로 번 돈을 '올인'했다 또 다른 덫에 걸린 셈이다.

#2 서울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다 영업이 안 되자 충청권으로 내려갔던 박모씨. 지난달 충남 부여군 세도면 등 세 곳에서 땅 3200평을 평당 10만~12만원에 샀다가 곤경에 빠졌다. 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 땅값이 평당 10만원 이하(호가)로 추락하고 거래가 끊긴 때문이다. 이 땅은 부여로 투기꾼들이 모여들기 전인 8월 초만 해도 평당 6만원이 채 안 됐었다. 투기 바람에 휩쓸려 뒤늦게 꼭대기에 샀다가 물린 것이다.

충청권 땅 시장을 이끌었던 기획부동산, 무허가 중개업자 등이'위헌 후폭풍'으로 된서리를 맞고 있다.

특히 대출을 잔뜩 받아 충청권 땅에 투자했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투자자들은 거래가 끊겨 깡통을 찰지도 모를 처지다.

◆전문 투기세력마저 물려=일반인뿐 아니라 기획부동산(땅을 헐값에 사들여 비싼 값에 쪼개 파는 업체)마저 물렸다. 이들은 행정수도 이전을 "건국 이후 최대 호재"라며 충남 연기.공주 주변과 충남 예산.홍성.서산.당진.태안 등을 헤집고 다녔고, 땅값을 연초보다 2~5배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들 지역이 지난 8월 말까지 대부분 투기지역으로 묶이자 부여.서천.보은 등지로 옮겨가 막판 투기바람을 일으키다 발목이 잡혔다.

서울 역삼동의 A업체는 지난 8월 충남 부여.서천과 충북 보은.진천 일대에 1만여평의 땅을 사 2500평을 되팔았으나 위헌 결정 이후 사려는 사람이 끊겨 나머지는 묶였다. 부여군 B공인 관계자는 "수십억원의 자금으로 충청권 땅을 사들인 기획부동산 가운데 아직 땅을 팔지 못한 업체가 많다"며 "투자금이 잠겨 날이 갈수록 큰 손해를 볼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불법 매매를 한 경우 땅값 하락으로 돈 잃고 처벌까지 받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막차 탄 투자자 울상=외지에서 기획부동산을 따라 뒤늦게 들어갔던 투자자들도 울상이다. 이들 중에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자)과 수도권에서 원정 간 중개업자들도 있다.

부여군 은산면의 한 중개업자는 "무허가 중개업자끼리 사고팔면서 땅값을 올리다가 막판에 물린 경우가 많다"며 "땅값이 낮다는 이유만으로 서너달 새 두배 넘게 올랐는데, 수도 이전 약발이 먹히지 않게 돼 거품이 꺼지고 있다"고 말했다. 미등기 전매를 하기 위해 무리하게 물건을 확보했다가 미처 팔지 못한 사람들도 적잖다고 이 업자는 귀띔했다.

부여군 세도.규암.은산면 관리지역(옛 준농림지) 땅은 올 초 평당 6만~7만원이었다 이달 초 8만~15만원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급락세다.

이 때문에 충청권으로 원정 갔던 상당수 중개업소들은 수도권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경기도 화성에서 부여로 갔던 중개업자 L씨는 "대박 잡으러 왔다가 돈만 묶였다. 다시 올라가야겠다"며 "계약자들의 해약 요구 등에 못 이겨 자취를 감춘 업소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온 다음날인 22일 이후 부여 등 충청권 일대의 상당수 중개업소가 문을 닫았다.

◆공동투자 모임도 삐걱=서울 강남 등지에서 계를 만들어 충청권 땅에 투자한 이들도 낭패를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투자자끼리 갈등 조짐도 엿보인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N씨 등 주부 5명은 1억원씩 거둬 지난 6월 충남 홍성의 땅 4100여평을 평당 12만원에 샀다. 처음에는 충남도청 이전 소문 등으로 평당 15만원까지 올랐으나 이번 결정 이후 값이 떨어져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일부가 투자금을 빼달라고 해 분란이 생긴 것이다. 다만 이들은 행정도시 건설 같은 충청권 개발 정책 발표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현도컨설팅 임달호 대표는 "수도 예정지의 보상금이 풀리면 땅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8월 이후 부여.서천.예산.청양 등지의 땅을 공동 매입했던 투자자들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성종수.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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