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행정수도특별법 위헌] 열린우리 '외환'에 '내우' 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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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이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열린우리당 내의 국가보안법 논란을 잠재우고 있는 양상이다.

우선 보안법 당론 결정(17일) 후 사흘째 반발해온 보수.중도 성향의'안정적 개혁을 위한 모임'(안개모) 회원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모임의 핵심 멤버인 안영근 의원은 21일 기자와 만나"당이 어려운 상황인 만큼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그는 20일 저녁까지만 해도'보안법 폐지 후 형법보완'이란 당론 대신 대체입법을 해야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나라당이 엄연한 제1야당이고, 열린우리당보다 지지도도 높은 게 사실이니 야당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KBS라디오 토론프로그램)라고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직(제2정조위원장) 사퇴까지 검토했었다.

그러던 안 의원이 헌재 결정이 내려지면서 태도가 확 달라진 것이다. 그는 당직 사퇴 의사도 거둬들인 상태다. 자연 보안법 폐지 강경론자도 이들에 대한 비판을 중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열린우리당 내 또 하나의 보수 중도그룹인'일토삼목회'(一土三木會) 회원들도 21일 서울 여의도의 한정식집에서 만나 뜻밖의 결정을 내렸다.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자"는 것이었다. 이날 회동에는 유인태(전 청와대 정무수석), 원혜영(전 부천시장), 강봉균.김진표(이상 전 재경부 장관), 정덕구(전 산자부 장관), 안병엽(전 정통부 장관) 의원 등 18명이 참석했다.

청와대 고위직, 정부 장.차관,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지낸 이들은 보안법 문제에 대해선 안개모와 비슷한 성향을 보여왔다.

결국 헌재 결정을 분수령으로 열린우리당 내 보안법 갈등이 잠복 국면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외환'이'내란'을 덮고 있는 형국이다.

천정배 원내대표로선 수도이전 좌초라는 악재를 만나 오히려 당내 갈등을 잠시나마 봉합하고 시간을 번 셈이 됐다.

천 원내대표는 21일 밤 열린 긴급의총에서"헌재 결정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추진하는 개혁은 조금도 차질 없게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안법 당론 등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수도 이전 좌초라는 정권 차원의 악재를 반전시킬 카드는 4대 개혁법안뿐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

그러나 수도 이전이 무산되면서 정책 추진력이 손상된 여권이 야당과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4대 개혁법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열린우리당 내의 난기류도 완전히 걷힌 것 같지는 않다. 보수 중도성향 의원들의 생각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강민석.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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