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나는 과학, 기는 윤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번 주 세계의 과학계는 인간 유전체(지놈) 지도가 완성됐다는 소식에 떠들썩하다.

지난해 6월 인간지놈 지도 초안이 작성된 데 이어 며칠 전 지도가 완성돼 공개됐다.

이로써 약 15년에 걸친 인류의 거대 과학 프로젝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유전정보 관련법령 미비

이미 알려진 대로 이 과학적 성과가 앞으로 우리 인류에게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는 이득은 엄청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이 성과가 몰고 올 사회적.윤리적 문제점들이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목적으로 미국은 1990년 엘시(ELSI)라는 프로그램에 착수했다.

인간지놈프로젝트의 일부로서 수행된 이 프로그램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기술이 가져올 윤리적.법적.사회적 문제점들을 발굴하고 분석하는 가운데 그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지난 십여년간의 대담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윤리 문제는 과학과 상업적 성공의 빛에 가려 간과돼 왔다.

유전정보로 인해 개인이 고용과 보험에서 차별 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에는 대개 합의를 보고 있으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유전자 특허, 유전정보의 개인 프라이버시, 산전 유전진단, 헌팅턴병 등에 대한 조기 진단검사, 반사회성 등 인간행태 관련 유전검사, 유전상담에 따른 환자(가족)의 알 권리와 모르고 지낼 권리 등등의 문제에 관해서는 논쟁만 거듭할 뿐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인간지놈 연구에 뒤늦게 뛰어든 우리나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최근 들어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생명과학보건안전윤리법' 시안을 마련했으며, 과학기술부는 '생명윤리자문위원회' 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국내 인간지놈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에서는 미국의 엘시를 본 딴 프로그램을 우리나라에서도 곧 실시할 계획이다.

또한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지난해 '생명과학인권.윤리법' 을 국회에 청원했을 뿐만 아니라 최근 '인간유전정보보호법' 의 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아직 국내 여건은 열악하다.

유전정보의 공정한 이용에 관한 기준과 사회적 안전장치가 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는 미아찾기와 범죄수사의 목적을 내세워 유전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몇몇 바이오 벤처기업은 개인의 유전정보를 이용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윤리를 강조하다가 과학기술의 발목을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과학기술의 무제한적 자유를 주장하면서 윤리를 무시해서도 안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과 윤리 이 둘 사이의 절묘한 균형과 조화다.

과학기술은 윤리라는 신호등을 잘 지킬 때 더욱 풍성하게 발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행동은 무엇인가.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유전정보의 사용을 규정하는 법과 지침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 선진국들과는 달리 아직 우리 나라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

21세기 지구촌 시대에는 과학기술 연구와 상품교역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진행되는 까닭에 법령이 미비한 나라는 이 대열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다.

***전문인력 양성에 투자를

둘째, 계층별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유전정보의 이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낮은 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과학기술 연구자 및 병원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윤리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초.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

특히 이들 젊은세대는 유전자 관련 과학기술의 직접적 이해당사자들이다.

셋째, 유전자 정보의 공정한 이용에 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할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우리의 인력규모와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십년 앞을 내다보는 안목으로 전문인력 양성에 투자해야 한다.

具榮謨(철학박사·울산의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