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에 먹는 견과류, 젊은 피부 유지에 도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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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19면

28일은 정월 대보름이다. 절식(節食)이 유난히 많은 이날의 주식은 약식과 오곡밥이다. 주 반찬은 묵은 나물(上元菜)이다. 반주로는 귀밝이술을 곁들였다. 찹쌀·차수수·팥·차조·콩 등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오곡밥을 이웃과 나눠 먹는 것이 이날의 미덕이다. 그래서 ‘백 집이 나눠 먹는 것이 좋다’는 뜻인 백가반(百家飯)이 오곡밥과 동의어로 쓰인다.

박태균의 식품이야기

오곡밥이 서민의 절식이라면 상류층에선 약식(藥食), 즉 약밥을 지어 먹었다. 약식은 찹쌀에 대추·밤·잣·참기름·꿀·진장을 버무려 쩌낸 찰밥이다. 재료에 약이나 다름없이 여기던 꿀이 들어가서 약밥 또는 약반(藥飯)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엔 참취잎·배추잎·곰취잎·피마자잎 등 잎이 넓은 나물이나 김 등으로 밥을 싸 먹었다. 이것이 복쌈이다. 그릇에 복쌈을 볏단 쌓듯이 높이 쌓아 올린 뒤 먹으면 복과 풍년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우리 조상은 대보름 절식을 드시면서 그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가족의 건강도 함께 빌었다. 대보름 음식은 요즘 기준으로 봐도 훌륭한 웰빙식이다. 대보름 음식과 관련된 선조들의 네 가지 믿음은 요즘 기준으로도 일리가 있는 것일까?

①부럼을 깨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 부럼은 호두·잣·밤·은행·땅콩 등 겉이 딱딱한 견과류다. 우리 선조는 처음 깨문 것을 밖으로 던지면서 ‘부럼이요’라고 외치면 그해엔 부스럼·뾰루지 등 피부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믿었다. 부럼은 단백질·불포화 지방·비타민·미네랄이 풍부한 식품이다. 이런 성분은 건성 피부에 유익하고 피부를 튼튼하게 한다(한양대병원 피부과 고주연 교수). 실제로 부럼을 즐겨 먹어 피부가 건강해지면 부스럼(종기)을 일으키는 화농성 세균에 대한 저항성이 커질 수 있다. 부럼엔 또 비타민C와 E 등 피부 노화를 막는 항산화 성분이 들어 있다. 그러나 지성 피부이거나 다이어트 중인 사람에겐 권장되지 않는다. 생밤을 제외한 부럼의 열량이 100g당 500㎉를 상회해서다.

②부럼을 먹으면 치아가 튼튼해진다: 대보름 이른 아침에 부럼을 단번에 깨물었다. ‘딱’ 하는 소리에 놀라 잡귀가 달아날 뿐 아니라 치아가 건강해진다고 여겼다. 부럼이 ‘이 굳히기’와 같은 말인 것은 이래서다.

과거엔 치아 상태가 곧 건강의 척도였다. 힘껏 악력을 가해 부럼을 깨물어 부수는 다소 무리한 방법으로 자신의 치아와 몸의 건강도를 시험해본 것이다. 그러나 부럼을 깨문다고 치아가 튼튼해지는 것은 아니다. 깨물다가 이가 상할 수도 있다. 혹시 부럼을 깨물다 치아가 빠지면 우유에 담아 즉시 치과 병원으로 달려가야 한다.

③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차게 마시면 귀가 밝아진다: 새벽에 귀밝이술(耳明酒)을 차게 해서 마시면 한 해 동안 귓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여겼다. 그러나 알코올이 청력 손상이나 귓병 치유를 돕는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포도주에 든 항산화 성분인 살리실산이 유해산소를 제거해 청력 손상 예방을 돕는다는 연구논문은 발표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귀밝이술의 살리실산 양이 극히 적어 귓병 예방 효과를 기대하긴 힘들다(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구자원 교수). 대보름날 찬 술을 나눠 마신 것은 정신 바짝 차려 농사 잘 짓자는 다짐으로 해석된다.

④상원채를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 대보름과 상원은 동의어다. 상원채는 대보름에 즐겨 먹은 묵은 나물이다. 호박고지·무고지·가지나물·버섯·고사리 등 아홉 가지 채소를 가을에 말려 갈무리해 뒀다가 대보름날 나물로 무쳐 먹으면 여름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믿었다.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 그러나 마른 나물엔 생 채소보다 식이섬유가 더 많이 들어 있으므로 상원채는 우리 조상의 변비 예방에 기여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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