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베토벤' 옛날 그대로일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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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호 05면

한국어가 세진다고 합니다. ‘쎄’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련되다’는 ‘쎄련되다’로,‘작다’는 ‘짝다’로 발음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거죠. 젊은 사람들이 주로 이런 버릇을 들이고 있는 듯합니다.그런데 음악도 세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공연장에서 듣는 ‘도레미’는 바흐ㆍ모차르트가 들었던 ‘도레미’가 아닙니다. 현대의 음이 더 높습니다. 높은 음은 좀 더 날카롭고 화려한 연주를 보장하죠.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오케스트라 음악회에 가면 연주가 시작되기 전, 오보에 주자가 ‘라(A)’음을 불면서 준비를 합니다. 모든 악기가 이 음에 맞춰 조율을 하죠. 이때 대부분의 현대식 오케스트라는 440~441Hz(헤르츠)의 음으로 기준을 잡습니다. 1초에 440~441번 진동한다는 뜻이죠. 정확한 음을 내는 기계를 가지고 진동수를 미리 맞춰둡니다.

이 숫자가 올라가면 음도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지휘자는 연습실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이 숫자를 정합니다. 오스트리아의 빈 필하모닉은 전통적으로 443Hz를 사용합니다. 들뜬 듯 화려한 음색을 고유의 소리로 삼은 거죠. 덕분에 빈 필하모닉과 한 무대에 서는 성악가들은 높은 음을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함께 내한 연주를 연 소프라노 조수미 역시 “빈 필하모닉의 고음은 나에게도 만만치 않다”고 걱정했죠.

그런데 20세기 이전에는 기준 음이 지금보다 반음 정도 낮았습니다. 1900년대 중반까지 435Hz가 주로 쓰였는데 이후 라디오 주파수와 소리를 맞추기 위해 음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솔’과 ‘라’ 사이 어디쯤의 음을 ‘라’로 놓고 연주했다는 뜻입니다. 똑같은 음악도 전체적으로 반음씩 낮았던 셈이니, 줄 풀린 기타 소리처럼 어딘가 나른한 느낌이 들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고음악 연주 단체들은 바로크 시대의 기준인 415Hz로 ‘라’음을 조율하고 연주하곤 합니다. 그 시절 그대로의 음악을 재현하겠다는 의지죠. 심지어 390Hz까지 낮춘 연주도 있었습니다. 절대음감을 가진 청중은 불편을 느낄 정도입니다.

속도도 빨라졌습니다. 영국의 음악 잡지 ‘BBC 뮤직’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의 연주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기사를 10여 년 전에 실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30여 년간의 음반을 조사해보니 최대 15분까지 연주 시간이 단축됐더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빠르고 화려한 연주, 즉 ‘강한’음악에 반응하고 있는 현대 청중 때문일까요?

우리는 클래식 음악을 수백 년 전 그대로라고 여기고 듣곤 합니다. 하지만 같은 곡도 시대에 맞춰 다르게 연주됩니다. 같은 시대의 베를린 필과 빈 필이 음을 다르게 낼 정도로, 음악은 상대적이어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죠. 앞으로도 이 변화가 계속될까요? 혹시 우리의 후손이 듣는 베토벤은 지금 생각지 못할 높은 음으로 연주되진 않을까요.

A 시대 바뀌며 높아지고 빨라졌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문화부의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장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든 질문이 무식하거나 창피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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