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러시아, 경원선 투자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러시아가 시베리아횡단철도(TSR)를 앞세워 유라시아 물류망 선점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돈 쓰는 일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던 러시아가 경원선의 현대화에 투자하겠다고 나선 데서 이같은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외국어대 권원순 교수는 "러시아 연방철도부 주최로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12~13일 여는 TSR 관련 설명회를 우리 기업에 협찬을 요청하지 않고 1억원에 달하는 비용을 자비로 충당하는 것도 전에 없던 일" 이라고 말했다.

*** 러시아 왜 서두르나

러시아가 서두르는 이유는 동북아의 물류망을 선점하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 지역의 철도망으로는 TSR말고도 중국횡단철도(TCR).만주횡단철도(TMR).몽골횡단철도(TMGR)가 있다. 이중 한반도와 직접 연결되는 것은 TCR와 TSR다.

문제는 남북한이 복원하는 게 경의선이라는 점이다. 이 노선은 신의주를 거쳐 TCR로 이어진다.

반면 러시아로서는 TSR로 연결되는 최단 노선인 경원선의 복원이 더 시급하다.

러시아측은 "TCR로 유럽에 가려면 어차피 TSR를 타야 하는 데다 중간에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거치는 데 비해 경원선으로 TSR를 타면 러시아만 거쳐 국경통과 문제가 간단하고 통과비도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고 강조한다.

경의선~TCR냐, 경원선~TSR냐는 유엔 산하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이사회(ESCAP)가 추진하는 아시아횡단철도(TAR)건설 사업에 어느 노선이 선택되느냐는 문제와도 직결돼 있다.

현재 TAR의 북부노선으로는 5개 후보가 거론되는데, 이 가운데 TSR와 TCR가 치열하게 경합 중이다.

크게 보면 유럽과 홍콩의 도전도 무시할 수 없다. 유럽은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 유럽~아시아를 연결하는 트로세카(TROCECA)프로젝트를 1998년부터 추진해 왔다.

이미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와 중국의 상하이(上海)를 잇는 도로는 개통됐다.

홍콩은 중국 철도부와 합작해 95년에 중국 본토까지 컨테이너 철도운송 서비스를 시작해 지금은 중앙아시아.몽골.우크라이나까지 서비스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이번 설명회에서 TSR 이용의 중요성을 부각한 뒤 오는 26일 한.러 경제공동위를 거쳐 27일 푸틴 대통령의 방한 때 한반도종단철도(TKR)와 TSR의 연결 문제에 관해 양국간 합의를 끌어낼 생각을 갖고 있다.

국내 전문기관들은 경원선의 현대화에 최소 2조원, 많게는 10조원 이상 들 것으로 추정한다.

따라서 이 사업을 한번에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

러시아 철도부 관계자도 "단계적 추진이 불가피할 것" 이라고 말한다.

우선 현재의 단선을 그대로 두고 시설만 보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당장은 물동량이 많지 않아 단선으로도 충분하다는 계산이다.

일단 이 노선이 개통되면 북한 구간의 통과료를 받은 뒤 개.보수에 재투자할 수도 있고 국제기구나 한국.일본기업의 투자를 끌어내기도 쉽다. 그 뒤 복선화 사업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 북한 입장은 뭔가

북한은 당초 TKR와 TSR를 잇는 계획에 소극적이었다. 그러나 ESCAP가 TAR 구상을 실천에 옮기자 방향을 틀었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개방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도 이같은 변화를 가속화했다.

북한으로선 2005년께부터 연간 1억5천만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통과수수료를 챙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철도를 현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술적 문제는 없나

북한의 철도와 TSR를 여객뿐 아니라 컨테이너 수송망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선 기술적으로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북한 철도는 전철화돼 있는데 남한 철도는 디젤 기관차를 이용하고 있고, 남북한 철도는 표준궤인데 러시아는 철로폭이 넓은 광궤여서 국경에서 짐을 옮겨 실어야 하는 문제도 있다.

남북한과 러시아의 철도 시스템.용어 및 운영 체계의 통일화도 시급한 과제다.

북한 철도나 TSR의 수송능력을 감안하면 이 노선이 유라시아 물류망의 중심축으로 부상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해양수산개발원 임종관 박사는 "현재의 설비를 감안하면 경의선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물동량, 경원선은 북한 동북부 지역과 러시아 물동량을 감당하기도 벅차다" 며 "TKR와 TSR가 연결된다고 곧바로 한반도가 유라시아 물류망의 중심 기지가 될 것으로 보는 것은 무리" 라고 지적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