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내가 태어난 날 엄마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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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즈음 생일 파티(잔치가 아니다)가 점점 화려하고 고급화하고 있다. 밴드.대형 케이크.선물 더미.축하 무대는 웬만한 공연장이 무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이 화려한 축제 어디에고 엄마를 위한 장이 없다. 축하도 감사도 선물도 없다. 아예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래선 안 된다.

물어보라. 내가 태어난 날, 엄마는 그때 어떠했는지를. 아빠는 출장, 배는 아픈데 택시는 안 오고, 그 초조하고 아픈 순간들.

어떤 아픔이 산고의 진통에 비길 수 있으리요. 밤새 흘린 땀만인가. 순산이 될까, 행여 기형아? 사내일까 여자아이일까. 온갖 불안과 걱정으로 잠도 없고 먹을 수도 없다. 이윽고 온 몸이 이그러지듯 극심한 진통과 함께 으앙 하고 내가 태어난 것이다.

엄마와 난 이렇게 만났다. 운명적인 만남이다. 대단한 날이다. 딱하게도 엄마의 고통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하지만 여기선 기르느라 애쓰셨던 내 어릴 적이 어떠했는지는 묻지 않기로 하자.

내가 태어난 날, 엄마에겐 기쁨이면서 걱정.불안.아픔의 날이었다.

내겐 기쁜 생일이면서 엄마에겐 힘들었던 출산의 날이다.

고로 내가 태어난 기쁨만큼 엄마의 아픔을 위로하고 감사를 드려야 하는 날이다.

어찌 내 생일 파티에 엄마의 자리가 없단 말이냐. 해마다 내 생일 달이 오면 지금도 배가 아픈 엄마도 있다. 이 경건하고 무거운 뜻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한다.

아이만이 제왕이 아니다. 아이만 일방적으로 축하를 받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엄마가 먼저다. 엄마에게 감사를 드리는 날로, 철들기 전부터 엄히 가르쳐야 한다. 아이가 어리면 아빠가 혹은 가족이 대신해 마련해야 한다. 엄마에게 진심이 담긴 축하.감사.선물을 드려야 한다.

이건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가르치는 일이다. 이 중요한 교육을 소홀히 하니까 은혜도 감사도 모르는 자기밖에 모르는 방자한 젊은이로 되어가지 않는가.

신나는 생일 파티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광란의 질주, 연못에 익사한 고교생들. 아깝다.

그리고 화가 난다. 예끼 몹쓸 녀석! 하필이면 네 생일에 엄마 가슴을 그리도 아프게 하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가 어떻게 가르쳤기에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의 생일만 축하하느라 정신이 팔렸던 우리의 좁은 소견 탓이다.

오늘은 아이 생일이면서 엄마의 날이다. 잔치 준비하느라 엄마가 나설 일이 아니다. 무대 중앙에 앉아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하와 위로, 격려와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그가 태어난 의미를 되새겨봐야 한다.

옛날 우리 엄마들은 생일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 주셨다. 나를 낳고 드시던 그 미역국을 함께 나누면서 그 날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는 뜻이 거기엔 담겨 있었을 것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피자집 아니면 양식집이다. 거기다 생일 축하도 서양 노래다. 거기엔 온통 아이의 생일 축하뿐, 다른 어떤 의미도 없는 싱거운 노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이의 생일 축하 전에 엄마에 대한 감사의 노래가 먼저다. 생일 축하엔 그런 뜻이 담겨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불리는 노래에 그런 깊은 뜻이 담길 순 없으리라. 이 멍청한 노래를 이젠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생일이면 온 식당이 떠나가라 부르고 있다. 한국 사람 생일에 한국 노래는 없는지 궁금하다.

다른 노래라면 몰라도 생일 축하만은 한국의 정서, 한국의 엄마가 담긴 노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외국 여행 중에 맞는 생일이라면 또 몰라도.

국적도 철학도 없는 노래 대신 아름다운 우리 노래를 만들어 부르게 할 순 없을까. 그렇게 자존심이 없나. 생일 노래 공모라도 해서 학교에서부터 가르치면 될 터이다.

생일의 깊은 의미를 담아서. 교육부는 무얼 하느라 그리 바쁜지, 설마 그 멋대가리 없는 노래의 총 국민 합창을, 세계화라고 자위하는 건 아니겠지.

이시형 정신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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