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자 투·개표 곧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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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일본 유권자들은 앞으로 은행의 현금 자동인출기(ATM)를 이용해 필요한 돈을 인출하거나 송금하듯 컴퓨터 화면에 뜬 후보의 얼굴 사진과 소속정당.선거공약.경력을 보고 투표하게 된다.

유권자는 원하는 후보의 얼굴에 손가락을 대고 누르면 후보별 득표수가 자동적으로 메인 컴퓨터에 보고되고 투표 종료와 함께 곧바로 집계결과가 발표된다.

일본 정부는 이르면 올 11월 히로시마(廣島)지사선거 때부터 이같은 전자선거를 실시키로 하고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있다.

가타야마 도라노스케(片山虎之助)일본 총무상은 "전자 투.개표를 실시할 수 있도록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 제출하겠다" 고 지난달 23일 말했다.

일본은 히로시마 지사선거에서 전자투표를 시범적으로 실시한 뒤 드러나는 문제점을 보완, 최종적으론 총선에까지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터치 스크린' 방식의 전자투표가 시행되면 밤새워 투표지를 세는 개표 절차는 사라진다. 또 지난해 미 대선처럼 재검표를 거듭하는 개표 혼란도 '원천봉쇄' 된다.

일본 정부는 전자투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 선거를 치를 때마다 10억엔(약 1백10억원)의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은 옛 통산성(산업경제성)이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자투표 보급협회' 에 위탁, 이미 1992년 이같은 시스템을 완성했고 99년 전국 동시 지방선거 때 사이타마(埼玉)현 가와구치(川口)시 등 일부 투표구에서 동물후보를 대상으로 한 모의 전자투표를 실시, 기술적인 검증도 끝냈다.

지난해엔 유권자 1만3천명의 영국 노리치시 지방선거 때 이 시스템을 수출해 처음으로 '실전' 에 사용했다. 당시 개표는 단 3분 만에 끝났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선 전자투표 도입이 늦춰져 왔다.

"선거인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에 후보자 한사람의 이름을 직접 써서 투표함에 넣어야만 한다" 는 선거법 조항 때문이다.

일부 '구세대' 정치인들은 여전히 이같은 후보명 기입식 투표를 고집하고 있다.

투표의 비밀 보장에 허점이 있고 해커들의 방해가 우려된다는 신중론도 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맞게 어마어마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는 선거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는 대세는 거스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지난해 12월엔 여야 국회의원 1백44명이 '전자 투.개표 시스템 연구회' 를 결성, 전자투표의 조기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정보기술(IT) 입국' 의 목청을 높이고 있는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도 매우 적극적인 자세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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