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정권따라 수사결론 바뀌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울지검이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당시 서경원(徐敬元)의원에게서 북한 공작금 1만달러를 받은 사실이 없다" 고 밝혔다.

이는 검찰이 1989년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을 수사하면서 내린 결론을 12년 만에 스스로 뒤집었다는 점에서 충격이다.

金대통령이 당시 徐의원에게서 1만달러를 받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진실을 알지 못한다. 1만달러를 받았건 안받았건 이미 그 사건은 사법적 절차를 거쳐 종결된 지 오래다.

또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그의 어떤 잘못이나 허물도 이미 국민에 의해 종합적.포괄적으로 평가받은 상태다.

검찰이 굳이 이제 와서 金대통령이 1만달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밝힌 것은 법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당시 국가보안법 아닌 외환관리법을 적용했으므로 공작금이 아닌 줄 알면서도 鄭의원이 '공작금' 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게 검찰 주장이다.

그렇다면 1만달러 수수 여부는 鄭의원의 범죄사실 공소제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종전의 결론을 뒤집어가며 발표한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또 검찰이 치밀한 수사 끝에 내린 결정이나 법집행을 자신들의 손으로 가볍게 뒤집어버린 것은 법의 안정성이나 검찰의 일관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일이다.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은 당시 국민적 관심 속에 광범위하게 수사했던 대형 사건이다. 특히 야당 총재가 관련됐기 때문에 매우 신중한 법률 검토를 했다고 봐야 한다. 앞으로 정치적 사건에 대해 어느 검사가 자신과 소신을 갖고 수사할지 걱정이다.

또 정권이 바뀐 뒤 수사 결론이 집권자에게 유리하게 뒤집히는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단순한 명예훼손 사건을 정권따라 수사결론이 바뀌는 듯한 인상을 주도록 변질시킨 것은 검찰의 자충수다.

검찰이 스스로의 권위를 허물면서까지 내린 이같은 결론이 과연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