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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경제대통령과 부총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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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역대 정부의 경제정책 운용방식은 대통령의 스타일에 따라 사뭇 달랐다.

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철저하게 경제부총리에 힘을 실어줬다. 장기영(張基榮).김학렬(金鶴烈).남덕우(南悳祐)등 쟁쟁한 인물들이 전권을 장악하고 정책을 주도적으로 끌고 나갔다.

김용환(金龍煥)같이 힘있는 경제수석도 있었지만 명실상부하게 경제정책의 사령탑이자 중심은 부총리였다.

*** 스타일 다른 역대 대통령

전두환(全斗煥)대통령은 반대로 경제수석에 의존했다.

그는 김재익(金在益)수석을 경제 가정교사로 초빙, 전폭적인 힘을 주면서 경제정책의 밑그림을 맡겼다.

바통을 이어받은 사공일(司空壹)수석 역시 무려 3년8개월 동안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 속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노태우(盧泰愚)대통령은 어느 쪽이라고 잘라 말하기 어렵다. 그도 처음엔 비서진이 너무 나서지 말 것을 당부했고, 초대 박승(朴昇)수석도 비서 역할에 충실했다.

그러나 문희갑(文熹甲).김종인(金鍾仁)수석은 달랐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盧대통령도 말로는 '부총리 중심' 을 강조했지만 행동은 그것도 아니었다.

그 바람에 文수석-조순(趙淳)부총리 시절엔 갈등이 심각했다.

경제팀에서 결정된 정책이 청와대에 가면 뒤집어지는가 하면 기획원차관 인사를 놓고 팽팽한 힘겨루기도 벌어졌다.

趙부총리가 두차례나 사표를 내는 해프닝도 있었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 때도 비슷했다. 굳이 따지자면 청와대쪽으로 약간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5년간 부총리가 7명이나 됐으니. 경제장관회의에서 한 장관이 하도 대드는 바람에 부총리가 '어지럼증' 이 생겨 회의가 중단되는 일이 생길 정도로 부총리 위상이 약했다.

국민의 정부는 어떤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준비된 경제대통령' 답게 자신이 주도권을 가졌다. 구조조정.노사문제 등 주요정책은 직접 방향을 잡고 대책을 챙겼다. 사실상 경제팀장 역할까지 겸했다. 워낙 경제가 급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본인이 자신도 있었다.

게다가 환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재정경제원은 무장해제당하고 부총리는 장관으로 '강등' 당한 터라 경제팀에 구심점도 없었다.

경제수석 역시 대통령의 뜻을 '잘' 받드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때문에 결정이 빨랐고, 이는 경제위기의 초기 대응에는 도움이 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부작용들이 나타났다.

장관들은 적극적으로 대통령 설득에 나서기 보다는 '지시사항' 받아적기에 바쁘다.

대통령이 "위기는 지났다" 고 하면 구조조정은 느슨해지고, "너무 낙관적 아닌가" 라면 강경노선으로 급선회했다.

'그게 아닙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 결과 모두가 청와대만 쳐다보게 됐다. 의약분업 시위대도 '대통령 면담' 을, 금융파업 때도 '대통령의 약속' 만 요구하는 판이다.

경제부총리가 3년여 만에 다시 생겼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운용방식도 달라져야 할 것이다.

아직 문제는 많지만 큰 방향은 잡힌 만큼 경제가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도록 역할분담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실무는 경제팀에 맡기고, 대통령은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면서 정치권 외풍을 막아주면 훨씬 효과적일 게다. 과거 실적을 봐도 이럴 때 경제가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 콤비·팀플레이가 효과적

아울러 경제부총리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언제든지 대통령을 만날 수 있게 하고, 그가 요청하면 장관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수석의 영향력은 최소화해야 한다.

대신 정 안되겠다 싶으면 바꾸면 되지 않는가. 이런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부총리의 부활은 의미가 없다.

물론 부총리의 각성이 먼저다. 진념(陳稔)부총리는 자리에 연연해 단기실적을 올리려고 편법을 동원하거나 구조조정을 소홀히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에게 욕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자유롭게 말할 용기가 없으면 자리를 수락해서는 안된다" 는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의 말을 명심해야 한다.

스타플레이어도 중요하지만 콤비플레이 또는 팀플레이가 더 효과적이다. 요즘같이 복잡다양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그동안은 불가피하게 경제대통령이 혼자 뛰었다.

이제는 경제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한 단계 높은 콤비플레이를 할 차례다.

팀원들과 경제주체, 정치권이 함께 뛰는 팀플레이가 되면 경제위기 극복이 더욱 순조로울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 멋진 콤비플레이, 팀플레이를 기대한다.

김왕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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