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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단체 홀로서기 서둘러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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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스포츠인들 중에는 "5.6공 때가 좋았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일반인들은 이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권위주의적이고 숨막히던 군사독재 시절을 그리워하다니 제 정신인가?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때는 스포츠인들에 대한 대우나 지원이 남달랐다. 육사 생도 시절 축구 골키퍼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스포츠맨들을 자주 청와대로 불렀다. 당시 무섭고 만나기 힘들던 대통령을 스포츠맨들은 의외로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거나 국가적인 스포츠행사 후에는 으레 청와대로 인사를 갔었고 대통령도 스스럼 없이 이들을 만났다.

그러자 유수 기업의 사장과 회장들이 앞다퉈 스포츠 종목 단체장에 취임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에게 눈도장을 찍어둬야 할 기업인들에게 체육단체장 자리는 더 없이 매력적이었다.

기업인들이 협회장을 맡자 그동안 쥐꼬리만한 국가예산과 회원들의 모금으로 근근이 꾸려가던 각 단체가 하루 아침에 넉넉해졌다.

각 단체의 국제대회 출전과 국내 대회 창설이 줄을 이었다. 풍부한 투자로 인해 선수들의 기량과 성적이 향상됐고 단체장들이 대통령과 만나는 기회도 많아졌다. 대통령은 단체장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때때로 경영하는 기업의 애로사항에도 귀를 기울였다. 스포츠에 돈을 쓰는 게 전혀 밑지지 않았다. 시쳇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절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체육부장관 출신이었고 황태자로 불리던 박철언씨도 체육부장관을 거쳐갔다. 서울올림픽을 잘 치르고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이 됐다. 스포츠인들은 국제스포츠기구의 이사나 회장단으로 추대됐다. 한국 스포츠의 르네상스 시대였다.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스포츠 전성시대는 막을 내린다. 군사정권 시절 독립기관이었던 체육부를 문화체육부 산하의 일개 국(局)으로 축소했다. 당연히 체육인들의 위상과 사기도 떨어졌다.

더 이상 대통령을 만날 수 없게 된 기업인들은 "이제는 경기인들 스스로 운영해 나가야 할 때" 라며 하나 둘 단체장직을 떠났다.

기업인 영입이 어렵게 된 국민의정부에서 스포츠 단체는 정치인들을 회장으로 영입하는 추세다. 아이스하키가 문희상, 핸드볼이 박광태, 여자프로농구가 김원길 의원(이상 민주당)을 각각 영입했다.

각 단체가 정치인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예산 배정에 도움을 받고 후원 세력들의 도움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의 경기단체장 취임 바람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체육단체들의 다급한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사회 모든 단체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존립해야만 하는 시대에 경기단체만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방만한 살림을 줄이고 마케팅을 강화해 하루빨리 독자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권오중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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