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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여의도에 토론을 허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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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제 강점기에 발행되던 잡지 삼천리 1937년 1월호에 실린 내용이다. 권번(券番) 기생을 포함하는 남녀 8명이 경무국장에게 보내는 공개 서한이었다.

70년도 더 지난 2010년 세종시 논란을 보며 청한다. 보스라고 지칭되는 정치인들이여, 부디 ‘여의도에 토론(debate)을 허하라’. 딴스홀은 정지용의 시처럼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사철 발 벗은 아내가 이삭 줍던 곳”과는 전혀 다른 모던 도시 경성 지역만의 일이지만 세종시는 대한민국 전체가 관련된 일이니 절실함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수도 이전은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포함해 오랜 공방은 이제 지칠 만도 하련만 여전히 대한민국을 카오스 상태로 몰고 있다. 그럼에도 찬성과 반대 이외의 의견은 설 공간이 없다.

지금껏 몇 의원(원희룡, 김무성·여상규, 정진석)을 제외하고는 정책적 제안도 소신도 없는 여의도 의사당이 국민을 대변하는 곳이라니 부끄러울 뿐이다. 정치 리더들의 협량함과 국회의원의 눈치 보기 합작이 지겹기만 하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일군 대한민국 국민의 피와 땀, 밴쿠버에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하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품격을 더 이상 배신하지 말아야 한다.

지난 17일 본지 6면에는 두 사람이 멱살잡이를 하며 날 선 말싸움과 몸싸움을 하는 사진이 게재됐다. 방송에서도 고성과 욕설의 대치를 생생하게 보도했다. 안양시 국토연구원에서 열린 세종시 발전안 및 법률 개정 방향 공청회에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평화롭게 살던 주민들이 언어적·물리적 폭력 상태에 이르기까지 국회의원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분통이 터질 일이다.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제대로 된 토론으로 모든 싸움의 주연을 맡을 것을 주문한다. 친이계든, 친박계든, 야당이든 무조건 찬성과 반대가 아니라 입법 주체로서 실력을 보여주는 공개적인 논쟁을 통해 세종시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정치 보스의 의견에 국회의원이라는 이들이 100% 찬성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그건 북한식 만장일치를 흉내 내는 일이다. 그 100이라는 숫자는 공포의 음지에서 피어나는 신기루일 뿐이다. 그곳에도 주민을 대표한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교조적인 집단 레토릭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며 주민들을 외면해 오지 않았는가. 그 결과는 기아로 인한 사망, 대규모 탈북, 꽃제비로 불리는 어린아이들의 유랑과 걸식이 아니던가. 남쪽이든 북쪽이든 무조건 따르기만 하면 토론은 사라지고, 토론이 없으면 해결책도 나올 수 없고 잘못되는 건 불문가지다.

제대로 된 토론은 개인별로 공적인 사명감을 지니는 국회의원들이 세종시에 대한 아이디어와 소신을 구체적인 내용물로 국민에게 선보이는 것이다.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와 예측도 있어야 한다. 보스나 당의 입장을 그대로 복창하는 교조주의적인 말로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건전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이 경쟁하게 해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마녀사냥을 하고 이단으로 모는 것은 중세 암흑시대에서나 있었던 일이다. 인간에게 봉사해야 할 말과 토론을 허용치 않고 오직 신과 교직자를 미화하는 레토릭만이 지배하던 중세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대화하고 타협하는 것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이른바 원안과 수정안의 양자택일을 전제하지 말고 토론을 통해 공정하게 경쟁하고 타당성과 신뢰성을 인정받아 설득력을 높임으로써 지배적인 여론으로 동의를 얻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삼아야 한다.

계파의 리더나 당의 입장은 무오류인 듯 감싸는 정객(politician)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가(statesman)의 레토릭으로 대결하기 바란다. 하여 다시 간청하노니, 여의도에 토론을 허하라.

김정기 한양대 교수·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