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다보스 포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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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먹고 입고 자는 걸 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고 보면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살아남을 장사는 밥장사.옷장사.집장사라 하겠다.

거기다 의식주(衣食住)의 주체인 인간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사람장사' 를 더하면 인간세상의 4대장사가 아닐까 싶다.

당연한 이치겠지만 그 중 가장 남는 장사가 사람장사다. 물론 그만큼 밑질 위험도 크다.

헤드헌터도 사람장사고 결혼중매업도 사람장사지만 매년 이맘 때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일명 다보스 포럼)만큼 사람장사의 진수를 보여주는 예도 없을 것 같다.

전세계 정치.경제.금융.문화.예술.언론.학계의 내로라하는 명망가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이들을 미끼로 수많은 유료 참석자들을 유인하는 것이 WEF 사람장사의 기본컨셉이다.

지난해 경우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 국가 정상급 인사만 33명을 끌어모았다.

또 각종 국제기구의 대표, 다국적 거대 기업의 최고경영자, 전세계 유수 매스미디어 대표 등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명단을 흔들어 보이며 손님을 유혹한다.

하지만 WEF 사람장사의 진짜 노하우는 다른 데 있다.

세상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그에 맞춰 수많은 어젠다를 만들어 내는 탁월한 재주가 그 핵심이다.

다보스 포럼은 약 1주일간 수백개의 어젠다별로 세션을 만들어 세션마다 그 분야 최고 권위자와 담당자가 주제발표와 토론을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유료 참가자들은 관심있는 세션에 참석해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사업 아이디어와 정보를 얻고 사람도 사귀게 된다.

영어만 제대로 된다면 수만달러의 참가비를 내고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판을 꾸미는 능력이 WEF의 진짜 노하우다.

31년째 이런 장사로 매년 수백억원의 수입을 올리는 WEF 창설자 클라우스 슈밥이야말로 불세출의 '사람장사꾼' 이다.

진념(陳稔)재경장관이 WEF 참석을 취소한 사연을 놓고 말들이 많다. 물론 약속은 지키는 것이 좋겠지만 사정이 생겨 못갈 수도 있다.

다보스 포럼의 성격 자체가 공식 국제회의는 아니다. 막판에 취소하는 경우가 드물긴 해도 늘 있는 일이다.

정작 안타까워해야 할 것은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몰려가는 정.재계 인사는 많아도 자기 돈 내고 다보스에 가서 '공부' 할 의욕과 능력을 가진 국내 인사는 별로 없다는 바로 그 점이 아닐까.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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