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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학계 - 경제사학계 맞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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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 대한제국 때인 1900년 고종(가운데)과 내각신료들의 모습.

고종(1852~1919)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점점 확산되고 있다.

지난 7월 이태진(서울대.한국사) 교수의 '고종시대의 재조명'(1999년 태학사)에 대한 김재호(전남대.경제사) 교수의 비평에서 시작된 이 논쟁은 매주 '교수신문'을 중심으로 비판과 반(反)비판이 거듭되면서 국사학계와 경제사학계의 맞대결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본지 9월 9일자 24면).

두 학계는 일제 식민지에 대한 견해부터가 다르다. 역사학계는 대체로 조선이 내재적으로 발전할 '싹'을 지니고 있었지만 식민지 지배에 의해 좌절됐다는 '내재적 발전론'을 펴왔다. 반면 경제사학계의 다수는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식민지 지배가 근대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해왔다. 이는 식민지 지배의 양면성 때문에 일제 청산이 어렵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고종은 근대화를 실현할 계몽군주였다"는 이태진 교수와 "왕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패하고 무능한 왕이었다"는 김재호 교수의 상호 비판으로 시작된 논쟁은 최근에는 ^대한제국이 근대적 입헌군주제였는지^경제성장의 시작이 조선후기였는지, 아니면 식민지 시기였는지 등으로 주제가 확대됐다.

최근 양 진영은 인구.땅값.임금 등에 대한 경제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놓고도 치열하게 맞붙었다. 이태진 교수는 경제사학자들이 제시한 조선 말~식민지 시기 통계수치가 경제 성장을 입증한다며 "대한제국의 근대화 성과는 경제지표로도 읽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재호 교수는 이런 주장이 '부족한 사실과 해석의 과잉'이라며 "이미 17세기에 시작된 현상으로, 대한제국에만 국한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을 다 비판하는 견해도 나왔다. 김동택(성균관대.정치학) 교수는 이태진 교수에게는 "고종의 보수적 개혁이 지지기반 부족으로 내적 붕괴 조짐을 보인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김재호 교수에게는 "'식민지 근대화=산업화'라는 인식은 곤란하며, 근대화가 갖는 폭압적 성격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왕현종(한국사) 연세대 교수는 "일제의 지배구조를 외면하고 당시 변화를 객관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했고, 경제사학자인 허수열 충남대 교수도 "식민지 지배라는 시대적 본질을 외면한 수량적 통계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고 동조했다.

오는 25일자 교수신문에선 이영훈 서울대(경제사) 교수가 주장을 편다. 이승렬(연세대.한국사) 교수.강상규(정치사) 박사 등도 곧 나설 예정이어서, 이번 논쟁은 올해 학계의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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