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陳장관 출국 취소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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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90년 5월 1일, 정영의 당시 재무부장관은 아시아개발은행(ADB)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인도 뉴델리에 갔다가 일정을 취소하고 귀국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주가가 폭락하고 부동산 투기 조짐이 예사롭지 않으니 대책을 마련하라는 전갈이었다. 鄭장관은 급거 귀국한 뒤 이른바 5.8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다.

94년 10월 3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연차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런던행 비행기를 탔던 홍재형 당시 재무부장관은 기내에서 위성전화를 받았다.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에 내정됐으니 귀국하라는 것. 洪장관은 런던에 내리자마자 바로 파리를 거쳐 귀국한 뒤 친척 집에서 지내다가 부총리 임명이 발표되자 모습을 드러냈다.

2001년 2월 22일, 진념 재정경제부장관이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참석 일정을 갑자기 취소했다.

재경부 관계자는 "공적자금 청문회가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데다 이기호 경제수석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특사로 가있는 상황에서 행정 공백이 생길까봐 회의 참석을 취소한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장관이 국제회의 참석 일정을 취소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계적인 경제계 인사들이 모이는 국제회의의 개막을 불과 사흘 앞둔 마당에 못가겠다고 약속을 깬 것은 예의가 아니다.

더구나 陳장관은 현지에서 두차례의 각국 재무장관 참석 회의와 한차례의 한국 경제 설명회를 가질 참이었다.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이 대신 참석하는 바람에 한국 대표는 두차례의 각국 재무장관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현지 한국 기자들은 주최측의 따가운 시선과 비협조 때문에 취재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내 사정 때문에 국제회의에 갔거나, 참석하려던 장관이 갑자기 일정을 취소하는 일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까.

한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이요, 교역규모로 볼 때 세계 11위다. 국가와 정부에 대한 신뢰는 작은 약속부터 잘 지키는데서 쌓이는 것이다.

송상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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