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원 숨겨주면 내란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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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열린우리당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을 개정키로 한 당론에 대해 '안보에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언론 등의 지적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내부 동요도 감지됐다. 이날 오전 이종걸 원내수석부대표의 기자회견에 이어 오후엔 천정배 원내대표까지 나서 각종 문제 제기에 해명과 반박을 했다. 특히 중앙일보가 보도한 13개 상황 설정에 대해 이들의 답변이 집중됐다.

천 대표는 "당론 발표 후 실제 법을 어떻게 해석.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혼선과 오해가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형법 개정안에 따르면 북한은 내란 목적이 있는 단체"라고 규정하며 "이 법안으로도 내란 집단에 의해 이뤄지는 모든 안보 위해 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중앙일보의 문제 제기와 천 대표.이 수석의 설명 요지.

(1) 국내 인사가 평양의 북한 노동당 행사에 참석하면 처벌이 어렵다

내란 목적 단체(북한 당국)를 도와주기 위해 갔다면 명확히 처벌해야 한다. 문제는 갔다는 것이 아니라, 가서 무슨 일을 했느냐는 내용이다.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려는 목적에 부화뇌동해 북한을 도와줄 목적으로 참석하거나 발언하면 예비음모죄가 적용된다. 이 경우 북한은 내란을 실행하고 있는 상태이기 공범으로 처벌될 수 있다.

(2) 서울시가 독립 공화국을 선언해도 처벌 불가

그렇지 않다. 전형적인 내란이다. 독립 공화국을 선언하면 대한민국 군대도 나가라고 할 것이고 세금도 못 내겠다고 할 것이다. 헌정 질서를 부인하는 행위다. 일부에서 '폭동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내란목적 단체라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형법상 내란죄의 폭동이라는 것은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하는 소요나 혼란이 포함된다. 공화국을 선포할 정도라면 이미 평온을 해할 정도라고 해야 한다.

(3) 북한 공작원이 정부의 기밀을 수집하는 간첩 행위를 해도 처벌이 어렵다

전형적인 내란으로서 형법에 규정된 '주요 임무 종사' 정도는 된다. 이는 간첩죄만큼 무거운 죄다. 형법 보완안에 간첩은 외국 또는 외국인 단체를 위해 이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외국에는 적국 개념이 당연히 포함된다.

(4) 북한 공작원에 은신처 제공하면 처벌 불가

돈을 주고 받는 것 자체가 반드시 나쁘다고 볼 수 없다. 북한에 식량도 대주고 비료도 대주지 않느냐. 대신 북한의 폭동을 도울 목적으로 돈을 받는 것은 내란죄로 처벌된다. 만약 돈받고 기밀을 수집해 줬다면 돈받은 것보다 기밀 수집을 해주는 게 내란죄로 걸린다. 공작원에게 은신처를 제공해도 당연히 내란죄다.

(5) 공산당을 국내에서 창당하면 처벌이 어렵다

공산당이라고 불리는 당이 어떤 강령을 갖고 있는지가 문제다. 단순히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한다면 문제가 안된다. 폭력적 수단을 통해 체제를 전복하겠다는 정당이라면 내란죄로 걸린다.

(6) 북한 노동당에 가입하면 처벌 가능

당연히 내란목적 단체 가입에 해당돼 처벌된다. 전형적인 내란죄다.

(7) 광화문에서 북한 인공기를 흔들어도 처벌 불가

북한과 연결된 사람이 했다면 내란죄가 된다. 그러나 스스로의 판단으로 인공기를 흔들면 처벌이 안된다. 현행 국가보안법도 엄격히 해석한다면 그 같은 행위는 처벌하기 어려울 것이다.

(8) 김일성 주체사상 강좌 개설하면 처벌 불가

순수한 학문적 연구라면 처벌받지 않는다. 누구나 김일성 주체사상을 연구하고 강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러나 내란집단과 연계성을 가진 선전선동의 일부라면 처벌된다.

(9) 북한 공작원이 국내에서 내국인과 접촉하면 처벌이 어렵다

만나는 것 자체로 처벌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공작원이란 사실을 알면서도 도와줘야겠다고 접촉했으면 그 행위는 내란죄로 처벌된다.

(10) 북한 잠수정 상륙을 보고 신고하지 않아도 처벌 불가

불고지죄가 삭제됐기에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 누가 신고를 안하겠나.

(11) 친구에게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처벌 불가

단순한 상황이면 사상의 자유에 속한다. 그러나 내란 집단과 연결되면 내란죄다.

(12) 일본인이 정부 기밀을 빼내 자국 정부에 제공하면 처벌 가능

설사 우방국 국민이라도 대한민국에 위해를 가한 행위라면 간첩죄다.

(13) 김일성 일대기를 인터넷에 유포하면 처벌 불가

단순한 역사 인물로서의 김일성의 행적과 사상이 옳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이 옳다고 표현했다면 그것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한다.

당 일각 "대체입법도 가능"

한편 천 원내대표 등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 대체 입법을 주장했던 중도.보수 성향 의원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유재건 의원은 "국회 절충 과정에서 폐지안이 바뀔 수 있다고 보고 계속 대체 입법을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이종걸 수석은 "대체 입법안이 현실적 방안이라고 판단될 때는 의원총회나 야당과의 협상을 통해 당론을 재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천 대표는 "지금 여러 가지를 가정해 많은 말들을 하는데 우리 당론은 명확히 형법 보완론"이라고 선을 그었다.

신용호.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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