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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포럼

성매매와 편견 그리고 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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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필자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나열한다고 해서 성매매특별법에 관한 양비론 또는 양시론으로 비난하지 말기 바란다. 사람들이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포장해서 말하는 게 우선 싫다. 생각하는 바를 펼쳐놓지 못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슨 알량한 소리이며 실속있는 대책이 나오기나 할 것인지 속이 답답해진다.

이를테면 어떤 단체들은 우리나라를 매춘공화국으로 몰아세운다. 성매매 여성을 33만명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있는가 하면 50만명에서 100만명 또는 150만명 이상으로 늘려 말한다. 고무줄 통계도 유분수지 이야기 출발부터 먹히지 않는다. 각각의 계산법대로라면 미국이나 일본은 매춘여성이 얼마나 많으며 이웃 중국이나 대만.태국은 또 얼마에 이를 것인가.

전통적 유교 관념이 알게 모르게 배어있고 그것이 한국의 도덕적.윤리적 기반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하는 우리들이 바로 매춘공화국 국민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들 가운데 상당수가 철저하게 이중인격자이며 사실상 매매춘 혐의를 받고 있는 셈이다. 실증적 증거도 없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몰아세우고 깎아내려도 되는지 이건 정말 국민이 억울해 할 일이다.

우리는 사회적 문제를 특별법 제정을 통해 '선전포고'하는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관습이 있다. 하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그만큼 큰 선전효과도 없다. 폭력범죄가 심할 때 또는 각종 경제사범 등이 증가하면 이를 징벌하기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성매매를 방지하는 윤락행위 등 방지법을 고쳐서 성매매특별법을 또 제정했다. 과거의 법률에 따라 단속만 철저히 하면 매매춘 행위도 줄어들고 집창촌 여성들의 권익도 보호될 수 있는데 새삼 특별법을 만들어 정치.사회적 의미를 강조했다.

경찰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및 질서유지에 있다. 이 우선순위를 제쳐두고 계속 성매매 집중 단속에 매달릴 각오라면 앞으로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지 뻔한 일이다. 과거의 윤락행위 등 방지법이 도덕적 접근이라면 지금의 성매매특별법은 상업적 측면에서 엄격한 법 적용을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인신매매와 자기결정권에 의한 성매매가 혼동된 채 확대 해석되고 있으며 관련 서비스 산업도 타격을 입고 있다. 물론 금융부문까지 영향을 받는다.

서민을 위해 높은 이자를 제한하면 실제 당사자들은 더 비싼 이자를 물어야 돈을 빌릴 수 있다. 서민을 위해 주택의 전세기간을 법으로 늘리면 역시 당사자의 부담은 오히려 커진다. 수요가 있는데 공급을 제한하거나 억제하면 엉뚱한 부작용이 나타난다. 그러나 사실을 이야기 하자면 이건 전혀 엉뚱한 게 아니다. 정치인과 행정 관료들의 두뇌 회전이 더디거나 맹목적이었을 뿐이다. 성매매 단속의 결과 성의 은밀한 거래가 필시 일어나고 있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것도 불문가지다. 여기에서 '부익부'는 그렇다치더라도 '빈익빈'이라는 표현을 왜곡하지 말았으면 한다. 경제적 현상을 상대적으로 비교하며 부작용을 우려했을 뿐이다.

복합 불황 시대에 집창촌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자활할 수 있는 직종에도 한계가 있다. 수많은 남성조차 실업자로 떠돌아다니면서 3D 업종은 아예 거들떠 보지 않는 현상을 가볍게 볼 수 없다. 직업으로서의 '성매매'를 해온 여성들에 대한 본질과 내면을 들여다보지 않고 편견과 오해, 그리고 정치적.행정적 과시에만 매달린다면 그 여성들은 다시 '돈 벌기 쉬운 직업'으로 되돌아 갈 것이다. 오랜 역사의 교훈을 거부할 수 있을 만큼 탁월한 정치가가 있다면 그는 이 시대의 타고난 인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최철주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