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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아쉬움 남긴 노근리 사건 처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노근리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한.미 양국 정부의 1년3개월에 걸친 노력이 어제 공동조사 결과 보고서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의 유감성명 발표로 일단락됐다.

보고서는 노근리 사건을 '철수 중이던 미군에 의해 피란민 다수가 사살되거나 부상한 사건' 이라고 규정함으로써 미군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는 사건의 실체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 반세기 전, 그것도 전쟁 중 발생한 사건에 대해 미 정부를 대표해 대통령이 직접 '깊은 유감' 을 표명한 것은 평가할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해온 우리로서는 미흡한 채로 서둘러 봉합된 아쉬움을 지우기 어렵다.

사격명령이나 공중공격에 대한 명백한 지침과 메모, 관련자 증언이 있는 데도 확증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의 경과에 대해 합의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채 조사를 마무리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보고서에 우리측 주장을 대폭 반영함으로써 앞으로 예상되는 민간 차원의 피해보상 소송에서 유리한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평(自評)하고 있지만 미측의 상반된 견해도 병기돼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과연 미 법정이 우리쪽 견해를 채택할 것으로 낙관할 수 있겠는가.

최근 중국의 '천안문(天安門)페이퍼' 에서도 보듯 역사의 진실은 결국 밝혀지게 마련이다.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진실의 실체를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보다 클린턴 대통령 임기 중 마무리짓는 편이 낫겠다는 정치적 판단 아래 정부가 이 문제를 다뤄온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근리 사건' 공동조사는 동맹국간 갈등 해소 방식의 긍정적 선례를 남긴 것으로 평가한다.

미국측은 한국전쟁 관련자료 1백여만건을 검색하고, 참전 미군 7천여명을 탐문추적해 증언을 청취하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다.

이같은 공조관계가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버팀목이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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