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금융, 이정도는 돼야] 6. 언제나 수익성이 먼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왜 대형 은행을 인수하지 않느냐고요? 큰 은행을 사들여 우리가 목표하고 있는 만큼 이익을 낼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틈새시장에서 성공한 금융기관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말 자산규모가 3천4백50억달러인 GE캐피털의 마이크 닐 사장이 한 말이다.

"GE캐피털은 다섯 부문으로 나눠져 있는데 부문별로 10억달러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수익성이 불투명한 사업을 남들이 한다고 따라했다면 이런 실적을 올릴 수 없었을 겁니다. "

지난해 12월 14일 뉴욕에서 북쪽으로 1시간30분 동안 달려 도착한 코네티컷주 스탬퍼드. 1백년은 됐음직한 큰 나무 사이로 5층 안팎의 아담한 건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곳이 GE캐피털의 본사다. 캐주얼 차림의 닐 사장은 취재팀을 직접 집무실로 안내했다.

"카드 사업을 예로 들어보죠. 미국의 월마트와 영국 해로즈백화점 카드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카드들이 사실은 GE캐피털 카드입니다. 우리는 미국 신용카드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 이름으로 카드 사업을 하는 것보다 주문자상표부착(OEM)방식이 유리해 이쪽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자존심보다 수익이 우선이지요. "

GE캐피털은 끊임없는 변신으로도 유명하다. 1933년 GE의 자회사로 출범할 때는 전자제품을 사는 고객에게 소액 대출을 해주는 할부금융사였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투자회사로 변신했고, 70~80년대에는 카드 등 개인금융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느냐를 알아내 거기에 스스로를 맞춰가는 것, 이것이 수익성 위주 경영의 요체입니다. " 고객이 원하는 것을 한발 앞서 찾아내 제공하고 거기에 걸맞은 대가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관행이 몸에 배야 한다는 것이다.

취재팀은 홍콩의 지하철역에서 이런 사례를 볼 수 있었다. 홍콩섬 지하철(MTR)의 센트럴역 구내. 환승역으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있어 잰걸음으로 오가는 승객들로 분주했다.

역구내 한 모퉁이에 있는 10평 남짓한 공간. 매표소가 아니라 HSBC그룹의 계열사인 항셍은행 지점이었다.

"대부분 지하철역에 우리 은행 지점이 있습니다. 바쁜 직장인들이 따로 은행을 찾기 어렵다는 점에 착안, 출퇴근 시간에 은행 일을 볼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은행으로서도 비싼 빌딩에 지점을 두는 것보다 경제적이죠. "

이 지점에서 근무하는 데비 첸(24)이 설명했다. 지점장을 포함해 다섯명이 근무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적은 완차이역(驛)에는 1인 지점도 있다. 물론 이곳에는 자동화기기(ATM)가 여러 대 설치돼 있다. 고객들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영업을 하지만 손해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항셍은행의 경우 고객들이 연간 1천홍콩달러(약 16만원)의 평균잔액을 유지하지 못하면 6개월마다 50홍콩달러(약 8천원)의 계좌유지 수수료를 물린다.

동전을 바꾸는 데도 봉투당 1홍콩달러(약 1백60원)를 내야 한다.

선진은행들은 수익성 차원에서 돈되는 고객과 그렇지 않은 손님을 철저히 구별한다.

취재팀은 영국 런던 시내 올드브로드 스트리트에 자리잡은 HSBC은행 지점을 찾았다. 지점에 들어서자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상냥한 은행 직원이 이니라 자동화기기였다.

Y자형 내부 구조를 하고 있는 올드브로드 스트리트 지점은 자동화기기 두대씩이 좌우로 늘어서 있는 3~4평 남짓한 마름모꼴 공간을 지나야 진짜 은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직원이 있는 창구도 두 종류다. 오른편 복도 끝으로 가면 서서 업무를 봐야 하는 '하이 데스크(high desk)' 가 나온다.

이곳에는 잠시 앉아 있을 소파조차 없다. 이에 비해 왼쪽 복도로 가면 편안한 의자와 책상이 있는 공간이 있다. 1대 1 상담이 이뤄지는 '로 데스크(low desk)다. 기업 고객이나 더 깊은 상담을 해야 하는 손님은 별도의 상담실로 들어간다.

올드브로드 스트리트 지점의 에드윈 래턴 매니저는 지점 영업 방침을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 고객이 자동화기기에서 일을 처리합니다. 자동화기기로 안되는 일반 업무는 하이 데스크에서 보도록 하고 주택금융 대출이나 자산관리 상담은 로 데스크로 안내하죠. 물론 금리나 수수료도 거래실적이나 기여도에 따라 고객별로 차별화합니다."

스탬퍼드.홍콩.런던〓특별취재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