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를 다지자] 10. 오·탈자 많은 출판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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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해 모 출판사가 펴낸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이 적지 않은 오자(誤字).탈자(脫字) 때문에 독자 항의 소동을 빚었다.

그 전집은 지난해 가장 우수한 출판물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나 일부 번역 상의 오류와 함께 여러 군데에서 오.탈자들이 지적돼 타격을 받았다. '오.탈자는 베스트 셀러를 좀먹는다' 는 말을 입증한 셈이다.

'세계 10대 출판 대국' 인 한국 출판문화의 기본을 의심케 하는 오.탈자 사례는 숱하게 많다.

쉴 새 없이 발간되는 단행본.잡지.사보 등 각종 출판물이 오.탈자투성이다. 내용이 좀 어렵거나 전문성을 띤 책이면 더욱 문제다. 학위 논문과 학술서라고 예외가 아니다.

1960년대 출판계에 갓 들어와 당시 고려대 총장이었던 현민(玄民)유진오(兪鎭午)선생과 우연히 출판 관련 좌담을 했다.

그 때 그 분이 한 말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는 "우리 출판물들이 두루 두찬(杜撰)이다" 며 출판계를 질타했다.

작품이나 저술에 틀린 곳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면 60년대에 비해 지금은 나아졌는가. 천만에, 그 때보다 오히려 두찬이 극에 달한 듯한 느낌이다. 과거 큰 사전을 만들 때는 교열 10교(校)의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그런데 요즘엔 5~7교 정도만 하고 사전을 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더 이상 하자를 발견할 수 없다며 교열을 끝낸다는 것이다.

보고, 또 보고 최후의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는 장인정신이 흐트러졌다는 지적이 많다.

일본은 어떤가. 교열 전문회사들이 성업할 정도로 교열을 중시한다.

기본을 철저히 지키는 셈이다. 인기 작가들에겐 출판사에서 아예 전속 교열 담당자를 지정해줘 책을 낼 때마다 같은 교열자와 작업하도록 배려한다.

자유기고가 간노 도모코(菅野朋子.여.37)는 지난해 문예춘추(文藝春秋)사에서 'J-Pop 세대가 본 한국' 이란 책을 내면서 교열작업에만 꼬박 한달 동안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교정쇄는 오자를 잡아낸 빨간 글자투성이가 됐고, 출판사 직원들도 그런 피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좋은 책이 결코 나올 수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되뇌었다고 한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파주출판단지 이사장>

▶ 중앙일보 새해특집 '기초를 다지자' (http://www.joins.com/series/new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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