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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프리뷰] '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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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썸(Some)'은 감독 이름 하나로 기다려온 영화다. '접속'(1997년)과 '텔미썸딩'(99년)으로 한국 멜로영화와 스릴러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던 장윤현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란 점에서 주목됐다. 한국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던 '데자뷔'(기시감. 실제 만나지 않은 사람이나 가보지 않았던 곳을 전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를 키워드로 삼은 것도 새롭다.

'썸'은 장면 전환이 빠른 미스터리 스릴러다. 스크린에서 잠시라도 눈을 떼면 작품을 따라가기가 어렵다. 특히 전반부가 그렇다. 경찰 호송 도중 사라진 100억원대의 마약을 둘러싸고 경찰과 탈취범, 그리고 마약조직 3자의 각기 다른 입장이 수시로 교차한다. 감독은 흐트러진 퍼즐을 맞추듯 사건의 진상을 파고든다.

'썸'은 일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닮았다. 마약사건을 수사해온 강력계 형사 강성주(고수)가 범인으로 몰리는 것. 여기에 '데자뷔'가 덧붙여지면서 영화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사건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교통방송 리포터 서유진(송지효)이 강성주가 24시간 안에 죽는 모습을 예감하는 장면과 대사가 여러 차례 반복된다.

'썸'은 신세대 영화다. 강성주부터 그렇다. 점퍼 차림의 우락부락한 형사가 아니다. 그는 머리를 염색하고, 귀걸이를 하고, 외제차도 몬다. '접속'에서 당시 유행했던 PC통신을 효과적으로 요리했던 감독은 이번에 요즘 젊은이의 필수품인 디지털 카메라.MP3 플레이어를 사건을 풀어가는 열쇠로 사용했다. 강성주와 마약탈취범이 쫓고 쫓기는 자동차 추격신도 실감난다.

그러나 '썸'은 혼란스럽다. 감독은 "누구나 쉽게 이해하는 즐거운 영화"라고 하지만 뒷맛이 그리 개운하지 않다. 스릴러의 생명인 개연성(그럴법함)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으나 왜 그래야하는지 흔쾌하게 동의할 수 없다. 드라마가 듬성듬성 건너 띄고, 각 인물의 행동이 툭툭 튀는 바람에 스릴러 고유의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감독이 자기 작품에 너무 깊게 빠진 것은 아닌지. 관객은 때론 '자상한 설명'을 요구한다. 그래야 "한 수 배웠다"며 무릎을 내리칠 수 있다. "'접속'과 '텔미썸딩'을 합친 '퓨전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은 결국 제목 '썸'처럼 성격이 모호한 액션극을 빚어낸 것 같다. 22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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