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상권 민자역사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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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엎친 데 덮친 격입니다. 경기 침체로 거래가 끊긴 터에 초대형 민자역사까지 들어선 때문이죠."(서울 용산구 한강로 3가 A공인 관계자)

서울 용산 일대 상권이 기우뚱거리고 있다. 임대료.권리금이 내림세이고 거래는 뚝 끊겼다. 경기 침체로 장사가 안 된 탓도 있지만 지난 8일 문을 연 용산 민자역사 스페이스9가 가뜩이나 줄어든 주변 상가 수요를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스페이스9는 총면적이 8만2000여평인 매머드 복합쇼핑몰이다. 여의도 63빌딩의 1.6배, 강남 삼성동 코엑스몰의 2.3배다. 1차로 3만2000여평의 전자쇼핑몰, 11개 상영관을 갖춘 CGV영화관, 대형 할인점 이마트 등이 들어섰다. 내년 4월에는 6개층 1만1000여평의 패션아웃렛이 추가로 입점한다.

이곳 점포는 1000여개. 문을 연 지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입점률이 58%에 이르고 있다. 용산 민자역사 시행사인 ㈜현대역사 서일엽 과장은 "이달 말이면 70% 넘게 찰 것 같다"며 "점포가 많은 전자쇼핑몰의 경우 용산전자상가와 구의동 테크노마크에서 옮겨 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현지 부동산업계는 용산 민자역사가 주변 상가 수요를 빨아들이는 '상권 블랙홀'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용산의 대표 상권인 남영동.갈월동(남영역~숙대 입구~서울역)의 경우 임대료.권리금 하락으로 건물주와 임차인들이 울상이다.

남영동의 경우 상반기까지 대로변 1층의 15평짜리 가게 권리금이 1억원을 넘었으나 지금은 700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남영동 H공인 관계자는 "매매 호가는 평당 5000만~7000만원으로 큰 변동이 없으나 거래가 끊겨 실제로는 이보다 낮다"며 "민자역사 상가로 이동하기 위해 내놓는 물건이 늘었다"고 말했다.

민자역사 주변인 한강로 일대 상가의 경우 '민자역사 후광'으로 매매.임대 호가는 상반기보다 올랐지만 거래가 없어 현장 분위기는 썰렁하다. 한강로 대로변 10평 상가의 임대료는 보증금 5000만원, 월세 170만~250만원으로 상반기보다 10% 정도 올랐으나 호가일 뿐이다.

특히 한강로 3가 등은 재개발구역 지정까지 추진하고 있어 상가 거래가 많이 줄어들었다. 재개발을 하면 가게를 비워줘야 해 임차인들이 들어오기를 꺼려서다.

한강로 3가 씨티공인 관계자는 "민자역사 입점 전에는 새로운 상권이 형성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주변 상가 값이 올랐지만 정작 완공 후에는 민자역사로 옮기려는 매물이 늘어 약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민자역사 완공으로 용산 일대 상권 재편이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민자역사와 업종이 충돌되는 인근 전자상가와 소형 근린상가.영화관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상가114 유영상 소장은 "고속철도 출발역인 데다 전자.패션.할인점 등을 아우른 복합상가여서 장기적으로 용산 일대의 상가 수요를 흡수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성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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