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사청문회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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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인사청문회는 미국이 세계에서 제일 처음 시작한 제도다.

1787년 연방헌법을 만들 때 연방 정부 공직자들의 임명 권한을 대통령에게 줄 것인가, 아니면 각 주 정부를 대표하는 상원의원들이 맡아야 하는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그러다 대통령이 지명하고 연방 상원에서 이를 인준한다는 절충이 이뤄졌다. 대통령과 주 정부가 권력을 나눠갖는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2백여년을 흘러오면서 청문회는 분권의 의미보다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특히 야당이 집권 세력의 독주를 막는 핵심 장치로 자리잡았다.

지난해 시작된 한국의 인사청문회가 국무총리.대법관 등 23명의 고위직에 국한된 것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각료 15명, 행정부 고위관리 4백여명, 연방 검사 93명, 주요 국가 대사 등 모두 6백여명이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대상자가 너무 많아 일부는 서류 심사만 거치기도 한다. 청문회는 상원의 16개 상임위에서 이뤄진다.

의원들은 소속 조사관들이 준비한 자료와 언론.시민단체에서 제기한 문제들을 토대로 지명자를 추궁한다.

의원들은 당사자는 물론 가족의 사생활에 대한 질문도 할 수 있다.

출석자가 "모른다" "기억이 안난다" 는 등의 답변으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면 사법처리가 가능하다. 의원들이 법무부에 의회모독죄로 기소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청문회가 끝나면 상임위는 인준 거부나 동의, 심의 지연, 본회의 회부 연기 등 네가지로 결론을 낸다.

상임위가 인준을 동의하면 상원 본회의에서 찬반 투표가 실시된다. 하지만 대부분은 상임위의 결정대로 통과된다.

상임위가 지명자의 자질을 문제삼아 심의를 지연하거나 본회의 회부 연기를 결정하면 대통령으로부터 지명은 받고도 몇달 동안 법적인 인준이 안되는 사태도 종종 벌어진다.

지금까지 미국에선 대법관 내정자 27명, 장관 내정자 9명 등 40여명이 인준을 받지 못하거나 자진 사퇴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1997년 중앙정보국(CIA)국장 등 지명인사 3명이 상원 인준을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클린턴은 93년에도 법부장관에 조 베어드를 지명했다가 그녀가 불법 체류자를 유모로 고용한 사실이 청문회에서 터져나와 결국 지명을 철회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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