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조반역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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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1966년 5월 7일, 저장(浙江)성 항저우(杭州)의 빈관에 연금되다시피 칩거하던 마오쩌둥(毛澤東)은 아랑이라는 시종을 시켜 극비리에 베이징(北京)의 린뱌오(林彪)국방부장에게 친서를 보낸다.

'5.7지시' 로 부르는 이 친서에서 마오는 '류샤오치(劉少奇)일파가 장악하고 있는 권력을 되찾기 위해 거사를 할 테니 혁명의 주역이 돼달라' 며 다섯가지 사항을 지시한다.

진시황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비견되는 문화대혁명은 이렇게 시작했다.

군사 쿠데타를 방불케 하는 전격작전으로 권력을 되찾은 마오는 '무산계급의 문화대혁명' 을 통해 자산계급과 모든 수탈계급 및 그 사상, 문화의 잔재들을 청소하려 했다.

이른바 '파구입신' (破舊入新)이다. 혁명의 주체는 10대들이 주축인 홍위병이었다. 이들을 동원할 때 마오가 남긴 말이 바로 '조반유리(造反有理)' 다.

'현실에 반대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며 이들의 행동에 면죄부를 준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도가니로 바뀐다. 제자가 스승을 패 죽이고도 '조반유리' 만 외치면 만사 OK였다.

그러나 마오 자신도 이처럼 나라 꼴을 '천하대란' 으로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가 바랐던 천하제일의 정치 즉 '천하대치(天下大治)' 는 이루지 못했다.

76년까지 10년에 걸쳐 3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알려진 이 광란의 권력투쟁으로 중국 역사가 50년 이상 후퇴한 것으로 학자들은 평가한다.

요상한 말로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하는 자민련의 김종필(JP)명예총재가 지난해 말 '조반역리(造反逆理)' 란 말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더니 곧 본색을 드러냈다.

'기존질서를 바꾸는 것이 이치에 어긋난다' 며 'DJP공조라는 숙명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뜻' 이었단다.

그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민주당 의원 3명이 자민련에 입당, 정치권이 얼어붙는 모양이다.

그러나 JP가 중대한 착각을 한 것 같다. DJP공조를 지키는 건 좋으나 그게 민의에 '조반' 하는 것임을 왜 몰랐을까.

세상이 혼란할수록 기초로 돌아가는 게 상책이다.

요상하고 어려운 한문구절 보다는 옛날 서당에서 천자문을 막 뗀 학동들이 배우던 '명심보감(明心寶鑑)' 천명편(天命篇)의 쉬운 구절이 생각난다.

"순천자존(順天者存)이요, 역천자망(逆天者亡)이니라"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에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 자고로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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