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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프리즘] 첨단 의학의 '아킬레스 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9면

70세 노인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까.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74세이므로 4년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평균수명은 어렸을 때 죽은 사람의 수명까지 감안한 수치이므로 실제 노인들의 기대 여명(餘命)은 이보다 훨씬 길다.

통계청에 따르면 현재 70세 한국인은 평균 82세까지 산다고 한다. 12년을 더 사는 셈이다.

수명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인체지놈사업과 배아복제기술 등 첨단의학의 발달로 각종 난치병의 정복도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천하를 호령했던 알렉산더대왕도 오늘날 불과 몇 천원이면 구할 수 있는 약이 없어 말라리아에 희생됐다.

로마시대의 황제인들 비아그라가 주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겠는가. 21세기에 접어든 현대인은 확실히 현대문명의 혜택을 구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엔 간과할 수 없는 복병이 두 가지 있다.

첫째가 교통사고다. 교통사고에 관한 한 한국은 후진국의 전형이다. 최근 도로교통안전진흥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한해 1분16초당 한건씩 교통사고가 발생해 40여 만명이 다쳤으며 9천3백여명이 사망했다.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 수도 8.4명으로 일본의 7배, 미국의 4배나 된다.

특히 한창 일할 나이인 10~30대의 사망원인 1위를 교통사고가 차지했다.

두번째 복병은 자살이다. 최근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10대 사망원인 중 자살이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1990년 9.8명에서 99년 16.1명으로 무려 64%나 늘어났다. 게다가 최근 경제난에다 자살 사이트 붐까지 겹쳐 자살을 부추기고 있다.

교통사고와 자살의 증가는 날로 조급해지고 우울해지는 현대인의 서글픈 자화상이자 첨단 의학의 유일한 아킬레스건이다.

21세기가 불과 며칠 남지 않은 지금 진정한 건강을 위해서라면 먼저 마음부터 다스려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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