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 도박꾼 몰리는 스키,아이스하키에 '시선 고정'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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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호 14면

미국의 토니 벤슈프가 11일(한국시간) 캐나다 휘슬러 루지 경기장에서 마지막 훈련을 하고 있다. 루지 트랙 바닥에 오륜 마크가 선명하다. [휘슬러 AP = 연합뉴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올림픽 기간에 언제건 불법도박·경기조작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빈틈이 없어야 한다”고 10일 말했다.도박은 동서고금을 통해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종종 지목됐다. 조르주 퐁피두(1911~74) 전 프랑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망하는 길이 세 가지 있다. 여자·도박·전문가다. 가장 즐거운 길은 여자, 가장 빠른 길은 도박, 가장 확실한 길은 전문가다.” 도박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다. 인류 최초의 문명 발흥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일종의 주사위가 도박에 사용됐다. 영국의 정치가·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1729~97)는 “도박은 인간 본성에 내재된 원칙이다”고까지 주장했다.

'승부조작 막아라'밴쿠버 겨울 올림픽 비상

가지가지 도박거리가 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릴 것인가’ ‘타이거 우즈는 이혼할 것인가’ 등. 도박은 스포츠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7일 막을 내린 미국 최대의 스포츠 축제인 수퍼보울 기간에도 경기 결과뿐만 아니라 ‘골대를 정하는 동전 던지기에서 어느 쪽 면이 나올 것인가’ ‘국가를 부르는 데 얼만큼 시간이 소요될 것인가’ 등의 시시콜콜한 도박거리에 100억~120억 달러로 추산되는 판돈이 오갔다.

도박은 지금 국제 스포츠계의 뜨거운 감자다. 승부조작(match-fixing)은 도핑과 더불어 스포츠에 양대 위협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축구에서 승부조작 사례가 빈번하다. 인터폴까지 나설 정도로 도박의 세계에 범죄 단체들이 깊숙이 침투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유럽축구연맹(UEFA)은 지난해 11월 범법자들이 9개국에서 200게임을 조작해 1000만 유로의 순익을 챙긴 도박 스캔들을 발각했다. 조직적으로 선수·코치·심판 등 축구 관계자들을 매수해 승부를 조작한 유럽 축구의 역사에서 최악의 사건이다. 지난 1월에는 중국에서 축구 승부조작 사건이 터졌다.

곧 개막될 겨울올림픽은 승부조작이나 불법도박의 위협으로부터 무사할 것인가. 1924년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처음 열린 겨울올림픽에도 도박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12~28일 밴쿠버 겨울올림픽 기간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제스포츠모니터링(ISM)이라는 스위스 소재 신설 기관을 통해 스포츠 도박을 감시한다. 참가 선수들은 도박에 대한 IOC 규정을 교육받는다. 참가 선수들이나 각국 관계자들은 올림픽 경기 도박에 돈을 걸 수 없다. 겨울올림픽의 전 종목이 도박의 대상이다. 그중 도박 상품이 가장 많이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기 스포츠는 아이스 하키와 스키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인터넷 도박의 타깃이 된 것을 인지한 IOC는 지난 베이징 올림픽 기간에도 국제축구연맹(FIFA)의 도박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450개 온라인 도박 사이트와 도박업자들의 도박 행태를 감시했다. 다행히 내기에 거는 액수는 7~70달러 정도로 비교적 소규모였고 대형 도박 스캔들은 터지지 않았다. 만약 이번 겨울올림픽에서 도박 스캔들이 터진다면 정형외과 의사 출신인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그의 마지막 임기가 끝나는 2013년까지 불법 스포츠 도박에 집중적으로 메스를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

국민을 도박 중독으로 내몰려고 하는 정부는 없어야 한다. 얄궂게도 스포츠 도박은 고성장 산업이라 정부의 주요 세수입이 될 수 있다. 유혹이 크다. 도박이 독이 되지 않게 하려면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각국 정부들이 인식을 같이한다. 나라별 대응이 다르다. 싱가포르·스웨덴·캐나다 등의 국가에서는 정부가 도박업을 독점하고 있다.

미국은 도박 금지 쪽에 가까운 정책을 펴고 있다. ‘프로·아마추어 스포츠 보호법(PASPA·1992년)’과 ‘불법인터넷도박금지법(UIGEA·2006년)’을 통해 네바다를 제외한 지역에서 스포츠 도박을 사실상 금지하거나 힘들게 하고 있다. 미국에는 스포츠북(sportsbook)이라고 불리는 150개소 스포츠 도박장이 네바다주에 있는 카지노에서 성업 중이다. 나머지는 모두 불법이다.

최근 뉴저지·미주리·델라웨어 등의 주에서 스포츠 도박 등 도박의 허용 범위 확대를 요구하는 로비 활동이 활발하다. 목표는 세수 확대다. 뉴저지주만 해도 도박이 전면 허용되면 1억 달러의 세금을 더 거둬들일 수 있다. 뉴저지주의 지하 도박 시장 규모는 100억 달러에 달하기 때문이다. ‘도박 양성화론’은 어차피 없애지도 못할 도박을 불법화해 지하 시장만 살찌울 게 아니라 세금을 거둬들이고 도박에 의한 피해를 규제를 통해 줄이자고 주장한다. 다른 찬성의 논리도 있다. 도박이 스포츠의 재미를 더해주며 도박은 개인의 자유나 프라이버시의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가 간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반대 진영의 목소리도 드높다. 250만 회원을 자랑하는 기독교연합(Christian Coalition) 등 보수 단체들은 도박 확대에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도박 중독의 확산을 사회·윤리적 보수주의자들은 우려한다. 내셔널풋볼리그(NFL) 등 주요 스포츠 리그와 전미대학체육협회(NCCA)도 스포츠 도박 합법화 확대에 반대한다.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일부 찬성론자는 스포츠계도 내심으로는 합법화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카지노 업계는 찬반양론이 분열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오프라인 도박보다 중독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인터넷 도박은 미국 등 각국 정부에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160억 달러 규모인 인터넷 도박 산업의 경우 해외 소재 사이트에 둥지를 틀고 있는데 이용객 중 반은 미 국민으로 알려졌다.

규제에 치중하는 미국과 달리 영국은 대표적인 도박 천국이다. 도박이 완전히 합법화돼 있다. 올해 남아공 월드컵의 경우 거래량이 16억6000만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는 축구 종주국 영국이 1966년 우승 이래 오랜만에 우승컵을 만져볼 절호의 기회다. 우승 확률이 스페인·브라질 다음으로 높다.

영국은 도박법(2005년)에 따라 규제 강화를 위한 도박위원회(Gambling Commi-ssion)를 창립했다. 도박 상품 광고도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골칫거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체육부의 의뢰에 따라 스포츠 도박 전문가 패널이 보고서를 1일 내놨다. 보고서는 도박을 규제하고 있는 도박위원회 내에 스포츠 도박 전담 기구를 설치하고 조사권을 부여하는 등 스포츠 도박 규제를 한층 더 강화할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사기 도박의 경우 현재의 최대 2년 실형으로는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교황 중 한 분인 교황 요한 23세(1881~1963)는 ‘망하는 법’에 대해 퐁피두와 약간 다르게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보통 세 가지 방법으로 망한다. 여자·도박·농사다. 우리 가족의 경우에는 가장 느리게 망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미국에서 도박업에 관심이 많은 뉴저지·미주리·델라웨어는 농업 등 사양 산업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주들이다. 과연 도박업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섣부른 도박업 확대에는 문제가 없을까. 사양 산업을 살릴 길은 없는가. 밴쿠버 겨울올림픽 개막을 계기로 살펴본 스포츠 도박의 세계는 이처럼 많은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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