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한국 완파, 흥분의 도가니 중국 … 32년 공한증 깬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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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국에 두 번째 골을 내준 뒤 한국 골키퍼 이운재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도쿄 AP=연합뉴스]

중국 남자축구 대표팀이 10일 일본 도쿄에서 32년 만에 한국을 3-0으로 대파하자 중국 대륙이 “마침내 공한증(恐韓症)에서 벗어났다”며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신경보를 비롯한 신문들은 ‘32년 만에 한국에 설욕했다’는 제목을 크게 뽑았다.

‘한국에 대한 두려움증’을 뜻하는 공한증은 1978년 이후 A매치에서 중국이 한 번도 한국을 이기지 못하자 중국 축구계가 자조적으로 만든 용어다. 32년간 역대 전적에서 중국은 27전11무16패의 절대 열세였다. 일본과 유럽 강호를 종종 꺾은 중국은 유독 한국만 만나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쉽게 흥분해 자멸하기 일쑤였다. 중국 축구의 깜짝 변신에는 나름대로 사연이 있다.

◆하룻밤 새 귀공자로=중국 대표팀은 이번 경기 전까지만 해도 전 국민의 빈축을 사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그런데 하룻밤 새 팬들로부터 귀공자 대접을 받고 있다.

중국인들은 외국인이 듣기에도 민망한 농담들을 동원해 축구 대표팀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왔다. 한 공무원은 “2008년 5월 쓰촨 대지진 와중에 모든 것이 흔들렸는데도 중국 남자 축구만큼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는 농담을 예사로 했다. 그만큼 중국 축구 대표팀이 개혁에 무감각한 집단이라는 뜻이다.

열성 축구팬이라고 공개한 시진핑 국가 부주석조차 중국 축구계의 위상을 꼬집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순 독일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축구팬은 일류이고 축구 시장도 세계적인데 축구 수준은 낮다”며 “(수준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축구계 개혁 효과=중국 축구 개혁은 최고 지도자의 말 한마디가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10월 중순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산둥성 지난에서 중국 축구계의 모범적 스타였던 룽즈싱을 만나 “(중국 축구가) 당신의 품격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질적인 심판의 편파 판정 논란과 승부 조작 시비뿐 아니라 축구 도박에 얼룩져 있는 중국 축구계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 발언을 계기로 축구계에 대한 대대적인 정화 운동이 시작됐다. 한 달 뒤 공안(경찰)은 프로축구 리그에서 승부 조작과 축구 도박에 연루된 산시와 광저우 팀 관계자 등 16명을 구속했다.

1월에는 중국 축구협회 난융 부주석과 축구협회 여자부 양이민 주임 등 축구협회 수뇌부를 비리 혐의로 구속했다. 사정 한파가 계속되자 축구계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중국 당국은 대표팀의 이미지가 나쁘다는 이유로 국영 중국중앙방송(CC-TV)이 이번 동아시아 축구대회 중계를 못 하도록 하는 충격 요법도 썼다. 일련의 개혁 조치들이 이번 대회에 출전한 대표팀에 자극제가 됐을 것이라고 중국 축구계는 보고 있다.

‘바링허우(八零後:80년대생) 세대’들의 당돌한 자신감이 공한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현란한 개인기로 한국 수비수 2명을 제치고 세 번째 골을 넣은 덩줘샹은 88년생으로 대표적인 바링허우 세대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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