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나이 먹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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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늙은이가 되면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그리고 군소릴랑 하지도 말고

조심조심 일러주며 설치지 마소.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하소.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하다오.

이기려하지 마소.져 주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언제나 감사함을 잊지 말고 언제 어디서나 고마워해요.

그렇지만 그것은 겉 이야기!

정말로 돈을 놓치지 말고 죽을 때까지 꼭 잡아야하오.

옛 친구 만나거든 술 한잔 사주고

손주 보면 용돈 한푼 줄 돈 있어야

늘그막에 내 몸 돌보고 모두가 받들어 준다나?

빈손 공치사일랑 아무런 소용이 없소.우리끼리 말이지만 사실이라오.

옛날 일들일랑 모두 다 잊고 잘난체일랑 하지를 마소.

우리들의 시대는 다 지나갔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봐도 이 몸이 마음대로 되지를 않소.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늙은이로 살으시구려.

자식은 노후보험이 아니라오.해 주길 바라지 마소

고집하지 말고 시새움도 하지 마소.

당황하지 마소.성급하지 마소.

뛰지 말고 넘어지지도 말고

감기에도 걸리지 말구려.

의리를 찾지마소.

수중에 가진 돈 없고 내 한몸 아플작시면

그 누군가 제몸처럼 날 돌볼까.

아프면 안되오.멍청해도 안되오.

늙었지만 바둑도 배우고 기체조도 하시구려.

속옷일랑 날마다 갈아입고 날마다 샤워하고

한 살 더 먹으면 밥 한 숟갈 줄이고,

또 한 살이 더 먹으면 또 한 숟갈 줄여서

적게 먹고 많이 움직시구려.

듣기는 많이 하고 말은 적게 하소.

어차피 삶은 환상이라지만 그래도 오래오래 사시구려.

<최인식할아버지의 생각>

'인생은 60부터' 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60 이후의 생을 잘 꾸려가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모든 것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요즘 시대엔 더욱 그렇다.

쌍둥이 형제끼리도 세대차를 느낀다는 우스개 말이 있을 정도인데 20~30년 차이가 나는 자식들 생각과 행동이 부모 세대와 심각한 갈등을 불러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게다가 여전히 건강하고 활력에 넘치는 요즘 60.70대들에게 사회적인 역할을 박탈하는 사회구조는 어쩐지 불합리해 보인다.

'아름답게 나이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뭐가 있을까.

30여년 전 맨손으로 상경, 고생 끝에 작은 사업체를 이룬 최인식(63.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씨. 그는 두 며느리들에게 명심보감을 나눠주고 읽어보라고 했지만 며느리들은 별로 읽는 것 같지 않아 섭섭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요즘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것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가끔씩 공장 운영을 둘러싸고 아들과 의견충돌을 빚기도 하지만 박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다는 생각에서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23년간 직장생활과 공장경영을 통해 마련한 약간의 돈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해 쓰다가 사회에 환원할 계획. 혹시 자신에게 잘하는 자식이 있으면 조금 물려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경제적인 힘이 있어야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다" 고 말하는 최씨는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손에서 놓지 않아야 한다" 고 말한다.

65세 정년퇴직 후 9년째를 맞는 전직 초등학교 교장 최영희(74.경기도 분당구 서현동)씨는 오히려 퇴직후 더 바쁜 생활을 보낸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옛 동료들과 국내 답사 여행에 나서는 그는 그 경험을 기행 수필로 담아낸다. 또 일주일에 1~2회씩 국립 남산도서관에서 학생들의 독서지도를 하는 자원봉사 요원이기도 하다.

최씨의 좌우명은 '더 많이 움직인다' 와 '끊임없이 배운다' . 이 좌우명에 맞게 그는 사회교육 강좌를 들으러 다니는 데도 열심이다.

점점 나빠지는 눈 때문에 두꺼운 책을 읽기 어려워지면서 대신 동서고전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관심있는 역사와 철학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재직 시절엔 미처 못했던 글쓰기를 실천에 옮겨 '한국 수필' 과 '수필 공원' 에 수필가로 등단도 했다.

그의 아내인 노신숙(71)씨도 남편 못지 않게 바쁘다. 주부대학에도 열심이고, 수영과 에어로빅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들 부부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인생은 죽을 때까지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는 삶의 과정. "이제는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중받는 시대가 아니다" 고 말하는 최씨는 "자식.며느리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 자신이 내실있는 생활을 꾸려나간다면 자연히 자식들에게도 영향력을 갖게 되지 않겠나" 라고 말한다.

노인들이 '60세 이후에 더욱 중요해졌다' 고 꼽는 것은 경제적 능력과 양보하고 베푸는 마음.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꾸릴 만큼의 경제력과 세대 차이를 인정하고 자식들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열린 마음가짐, 그리고 함께 생을 즐길 동반자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노인복지학회 임춘식(52)회장은 "요즘의 노인들은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가고 있으며 자식들에게 의지하기보다 동연배들끼리 즐기는 삶을 더 선호한다" 며 "노인들이 고집 세고, 권위적이며, 무능력하다고 여기는 잘못된 생각이 세대간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 사회적 요인 중의 하나" 라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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