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잡음과 의견의 차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민주주의 체제에 잡음(雜音)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뿐이다. 어떠한 의견도 그 자체로 귀중하다.

무시되거나 억압될 수 있는 잡음이 아니다. 수많은 의견이 때로는 부닥치고 때로는 화합하며 전체적으로 조화를 찾아나가는 것이 민주주의다.

*** 異見 포용 못하는 집권당

잡음이란 표현은 권위주의 체제에서나 가능하다. 획일적으로 단일 목소리를 내려 한다면 그밖의 의견들이 잡음으로 들릴 수밖에 없다.

어떤 의견이 잡음이라고 쉬쉬하며 억지로 덮으려 하는 경향이 클수록 권위주의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당의 동교동계 핵심인사들이 단합모임을 갖고 "잡음이 나오지 않도록하자" 고 결의했다. 여러 잡음 때문에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누(累)를 끼친다고 걱정했다.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당무 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까지 다짐했다.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충정이 대단하다. 그러나 아름답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집권당이 여전히 권위주의의 '잡음기피증' 을 탈피하지 못했음을 확인하게 돼 씁쓸하다.

16대 총선 때 민주당 소속의 정치신인이 많이 당선됨으로써 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커졌다. 그 후 최고위원 경선의 열기는 이 기대를 배가했다.

그러나 최근 당 내분의 신속하지만 부자연스러운 봉합은 다양한 목소리간의 민주적 상호작용에 대한 기대감을 여지없이 깨뜨린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이라면 다소 과격하거나 민감한 발언도 하나의 의견으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상반된 입장들이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게 허용하고, 상호 조정과 합의를 이룰 수 있도록 대화 경로를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 잡음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정당은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이다. 결코 지향점이 돼서는 곤란하다.

비단 당위적 민주주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정치의 관점에서 보아도 다양한 의견의 분출과 때로의 내부 갈등은 민주당(다른 정당도 마찬가지지만)에 득이 될 수 있다.

우선 조직의 장기적 안정성을 유지해준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독자적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1백19명이나 보유한 민주당에서 의견의 충돌을 장기간 인위적으로 막기란 현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잡음을 내지말자고 다짐했지만 정치적 야심이 큰 정치인들이 민감한 권력사안에 대해 얼마나 오래 침묵할 것인가.

갈등의 강제적 봉합은 장기적으로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억눌렸던 의견이 일시에 터질 때 갈등은 조정 불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다.

특히 정권 말기에 선거를 앞두고 정치갈등이 폭발하면 그 내부 파괴력은 치명적일 것이다. 반면에 갈등이 그때 그때 분출되면 처음에는 혼선이 빚어지겠지만 결국 갈등이 흡수될 여지가 커진다. 다양한 의견간의 역동적인 작용은 조직이나 체제의 안정성을 위해 오히려 약이 되는 것이다.

상충되는 목소리가 들릴 때 당 결정의 신축성도 기할 수 있다. 요즘 사회이익들이 날로 복잡하게 분화되고 있다.

어떤 의견도 광범한 찬성을 얻기 힘들어졌다. 같은 정당의 정치인들간에 의견의 통일이 이뤄진다 해도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단일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더 부담스럽다. 차라리 여러 의견들이 엇갈릴 때 상황에 따른 행동 수정이나 조정이 용이해질 수 있다.

*** 갈등 누르면 속으로 곪아

이밖에도 다양한 의견의 존재는 혹시 국정의 결과가 잘못됐을 때 그에 대한 집권당으로서의 책임을 분산시킬 수 있다.

또한 역설적이지만 내부 이견(異見)은 상대 정당과의 관계에서도 협상력을 오히려 증대시킬 수 있다.

특히 여당으로서는 상대적 약자인 야당의 양보를 이끌어냄에 있어서 당내의 반대 의견을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아울러 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수준이 과도하게 높아져 결국에는 불신감만 가중되는 우를 피하기 위해서도 당내 의견들의 적당한 대립은 긍정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당내 이견이 항상 이상적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잡음이라고 덮기보다는 정당한 의견으로 인정하고 조화를 도모하는 태도가 당위적으로나 현실정치적으로 요구되는 때다.

임성호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