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병원학교' 연 세브란스 김병길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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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흰 가운을 입은 의사나 간호사가 밤낮 주사나 놓고 피나 뽑아가지고는 어린이들에게 병을 극복하려는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겠어요? 성장기의 어린이 만성환자는 질병 치료와 더불어 미술.음악 교육 등을 병행하는 심리요법이 중요합니다. '토털 캐어(total care)' 가 필요한 거죠. "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장기투병 중인 어린이 환자를 위해 지난 11일 '어린이 병원학교' 를 연 연세대 의대 김병길(金炳吉.63.소아과)교수.

병원학교는 올해 초 金교수의 제안으로 개설 준비에 들어가 지난 6월부터 석달간 시범운영을 거쳐 설립됐다.

53병동에 위치한 이 학교는 10여평의 작은 공간에 마련됐지만 소아암.백혈병.만성 신장질환 등을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는 아픔을 이겨내며 공부할 수 있는 '꿈의 학교' 다.

아이들은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영어회화.음악.미술.종이접기.율동 등 관심있는 과목뿐 아니라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가르치는 교과수업도 받을 수 있다.

특히 연대 간호대 아동간호학교실(주임교수 柳一榮)은 초등학교 교재를 이용해 학교교육과 연결된 개인별 지도를 맡기로 했다.

"연말이면 어린이 환자를 위한 공연이나 연극 등의 이벤트가 많이 열립니다. 그 자체도 의미는 있지만 단발성 이벤트로는 병원에 있는 게 스트레스 그 자체인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못됩니다. 또래의 동료 환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통해 '빨리 이겨내 뛰어 놀아야지' 라는 의지를 북돋아줘야죠. " 병원학교는 뜻을 같이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의료계 파업으로 손실이 커진 병원에 예산 지원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간호사 한 명이 TV를 기증했고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컴퓨터 등 학습 도구를 마련할 수 있었다.

또 코미디언 이용식씨가 명예교사를 자청했고 연대생과 초등학교 교사 등 자원봉사자들이 무보수로 아이들의 교육을 맡기로 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관 자원봉사자들과 연대 학군단(ROTC)도 자원봉사자로 참가한다.

"원래 9월 개교 예정이었는데 의료계 파업때문에 연기됐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빨리 문을 열라고 얼마나 성화를 부리던지…. 부모들과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니 의사라는 직업에 보람이 느껴집디다. 의료계 파업으로 깨어진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

金교수는 1961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등을 거쳐 세브란스병원에서 31년째 소아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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