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지역경제 외환위기 수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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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지역 기업인들의 위기감이 외환위기 직후 수준에 버금간다. 삼성상용차와 우방의 퇴출은 그러잖아도 허덕이던 대구지역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인천 경제의 30%를 좌우하는 대우자동차의 부도로 이 지역 기업들이 신음하고 있다. 이보다 형편이 낫다는 다른 지역에서도 '앞이 안보인다' 고 야단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달 하순부터 전국 1천9백93개 제조업체 경영자에게 '내년 1분기 경기가 어떻겠는가' 를 물어 피부 경기를 수치화했다.

대한상의 엄기웅 조사본부장은 "밖으로 반도체값.환율의 불안에다 안으로는 금융경색.구조조정 지연.정부정책 불신.대기업 부도 등이 겹쳐 많은 기업인이 내년도 경기전망을 '불투명' 에서 '악화' 로 보는 것 같다" 고 풀이했다.

◇ 경제, 외환위기 수준인가〓대한상의가 11일 내놓은 기업 경기전망 자료를 보면 내년 1분기의 경기실사지수(BSI)는 평균 63으로 올 4분기(1백9)보다 46포인트나 급락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의 분기별 BSI 61~75와 비슷한 수준이다. BSI가 1백 아래면 지금보다 경기가 나빠질 것으로 보는 기업이, 좋아질 것으로 보는 곳보다 많다는 뜻이다.

인천은 대우차의 부도와 조업중단, 대구는 삼성상용차.우방의 퇴출에다 협력업체의 경영난까지 겹쳐 두 지역의 BSI는 각기 55와 37로 외환위기 직후는 물론 대한상의가 72년 이 조사를 시작한 이래 가장 낮다.

부산(55).대전(60).광주(67)지역 기업 경영주의 체감지수도 60 안팎으로 낮고, 상대적으로 나은 서울(77).울산(72) 역시 1백을 크게 밑돌았다.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원재료값으로 BSI가 58까지 떨어졌다. 경상이익(61).자금사정(65).내수(66) 등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나마 설비투자(95)와 수출.고용(90)을 상대적으로 좋게 보았다.

업종을 보면 올 4분기에 섬유.유화.목재를 제외한 전업종이 1백 이상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겨울철에 잘 팔리는 사무기기(1백15), 2~3년치 조업물량을 쌓은 조선(1백6) 등 두개 업종 말고는 모두 1백을 밑돌았다.

◇ 신음하는 지역 경제〓대구상의 채문식 사무국장은 "우리 지역의 오랜 대표 업종인 섬유.건설업 기반이 무너진 데다 자동차 부품업계마저 명맥이 끊기면 앞으로 주민들이 무엇에 기대야 할지 걱정" 이라면서 "지역유통과 상권도 무너지고 있다" 고 말했다.

인천 남동공단의 반도체 금형업체인 BK테크의 방수창 사장은 "대우차.대우중공업과 직접 관련이 없는데도 분위기만으로 불안감을 느낀다" 고 말했다.

부산지역 기업들은 조선업을 제외한 신발.섬유 등 전업종을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대전에선 대덕벤처밸리가 움트고 있지만 유통.건설 등 비제조업의 장기 침체로 제조업의 활력을 되살리는 데는 역부족이라고 느끼고 있다.

울산의 경우 석유화학 업종의 부진이, 서울은 퇴출기업의 본사가 몰려 있다는 점이 경기회복의 마이너스 요인인 것으로 지적됐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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