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다큐 ‘아마존의 눈물’ 메이킹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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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열대 우림 ‘아마존’. 미지의 세계였던 그곳이 MBC 창사 특집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에서 베일을 벗었다. 아나콘다와 악어 그리고 벌거벗은 원주민이 공존하는 아마존 120일간의 촬영 기록.

기획_박진영 기자 취재_윤미영(프리랜서) 사진_이민희(studio lamp), 김진만 PD 제공

아마존 무용담의 두 주인공 송인혁 촬영감독(우)과 김진만 PD.

제대로 일냈다. 시청률 25.3%. 요즘 웬만큼 잘나가는 드라마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이 높은 시청률 기록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얻어냈다. 1년 전 점차 사라져가는 북극 얼음 대륙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북극곰과 이누이크족의 삶을 보여주며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던 ‘북극의 눈물’ 이후 MBC가 2번째로 선보이는 지구 환경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이 그것. 총 제작비 15억원, 9개월의 사전 조사, 그리고 250일간의 제작 기간이 소요된 이 초대형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제작진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밀림의 무용담을 늘어놓는 김진만 PD와 송인혁 촬영감독. 하지만 그들이 들려주는 내용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미션 no.1 최강의 다큐멘터리 드림팀을 찾아라

MBC 내에서 ‘아마존의 눈물’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가 떠돌기 시작한 건 벌써 오래전의 일이었다. 좋은 기획이었지만 만만치 않은 고생을 떠맡아야 하는 터라 모두들 프로젝트팀에 선발되지 않으려고 팀장PD의 시선을 피하고 다니길 여러 날. 어느 날 김진만 PD에게 떨어졌다.

“처음엔 제가 아니고 다른 선배가 가기로 했는데, 결혼한 분이라 가족들의 반대가 심했어요. 그래서 싱글인 제가 타깃이 돼 물망에 오르게 됐죠(웃음).”

그렇게 일을 떠안은 후 김 PD가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송인혁 촬영감독이었다. 드라마 ‘대장금’, ‘이산’ 등 대작 드라마는 물론 MBC의 다양한 다큐멘터리를 화면으로 담아낸 최고의 베테랑 촬영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송 감독은 김 PD와는 달리 어린 딸까지 둔 가장의 몸이었지만, 과거 에베레스트 산에도 올랐던 경험이 있었던 만큼 흔쾌히 합류했다.

“가겠다고 대답은 쉽게 했는데,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 보니까 세계 5대 독충이 있는데 그게 다 아마존에 있다는 정보를 발견했어요. 걱정이 돼 김 PD에게 전화했더니 하는 말이 ‘형, 그런 거 보지 말고 우리 그냥 무식하게 갑시다’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무조건 나를 살려만 가지고 다시 여기 데려와 달라고(웃음).”

송인혁 감독 외에도 김현철 PD, ‘북극의 눈물’을 촬영한 경험이 있는 여성 조연출 김민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과 다큐멘터리 ‘빙하’의 김만태 촬영감독 등 그야말로 최강의 MBC 다큐멘터리 드림팀이 꾸려졌다. 하지만 제작진의 굳은 결심만을 믿기엔 아마존이란 곳이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우선 천연 원시림에서 살고 있는 탓에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매우 떨어지는 원주민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브라질 정부로부터 까다로운 촬영 허가를 얻어야 했다. 그들이 요구하는 각종 병원 진단은 물론 파상풍, 말라리아 등 각종 질병에 대비한 6개의 예방 주사를 맞았고, 다시 한 번 브라질 국립 병원에 가서 똑같은 건강 검진을 받아야만 했다. 그즈음 설상가상 전 세계에 신종 플루가 번지기 시작하면서 하마터면 촬영이 취소될 뻔한 위기의 순간도 찾아왔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모두 같은 마음이었어요. ‘제발 나한테 질병이 있어서 이번 촬영팀에서 빠졌으면 좋겠다’ 하는(웃음).”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촬영팀 전원의 건강에 이상 없음 결과가 나왔고, 마침내 브라질 정부로부터 아마존을 촬영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졌다.

미션 no.2 죽지 않기 위해 살아야 한다

상상 이상의 신비로움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아마존. 촬영은 초반부터 큰 위기에 봉착했다. 편의상 원주민을 촬영하는 팀과 자연 생태계를 촬영하는 팀으로 나눠서 진행하던 중, 먼저 촬영을 떠난 생태계팀에서 어느 날 다급한 전화가 왔다. 어두운 밤에 보트를 타고 이동하다가 마주 오던 다른 보트와 충돌해 전복되는 사고가 일어난 것. 비싼 카메라 장비는 깊이 50m가 넘는 아마존 강에 수장되어 버리고, 카메라 감독은 뒤집힌 배 안에 갇혀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한 대형 사고였다. 당시 생태계팀 김민아 PD와 김진만 PD의 통화 내용은 이랬다.

“촬영했어? 배 뒤집히는 거 촬영했어?”(김진만 PD)
“선배! 사람이 죽을 뻔했는데 지금 촬영이 문제예요?”(김민아 PD)

김 PD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김민아 PD가 무척 서운해했어요. 그 사고로 촬영했던 테이프도 일부 잃어버렸고, 꽤 큰 사고여서 브라질 방송에까지 보도가 됐었죠.”

생태계팀뿐만 아니라 원주민 촬영팀에게도 위기는 매 순간마다 다양하게 찾아왔다.

“여러 원주민 부족을 촬영했는데 촬영 전에 원주민들이 요구하는 것을 선물로 줘야 했어요. 어떤 부족을 촬영할 때 모터보트를 달라고 해서 주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까 저희 발전기를 탐내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쪽에선 발전기가 없으면 촬영을 못하니까 안 된다고 했더니 갑자기 원주민들이 모여들어 위협적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우리를 감금시키겠다고 협박을 했어요.”(김진만 PD)

“저는 그때 짐 지키느라 혼자 우리 쪽 숙소에 있었는데 원주민들이 소리를 지르니까 큰일 났구나 싶었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전기가 끊겨버린 거예요. 알고 봤더니 김 PD가 위험을 감지하고 발전기를 주겠다고 약속했더니 그 즉시 발전기를 해체해서 가져가버린 탓에 전기가 끊긴 거죠. 더 이상 촬영할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그날 밤 새벽 4시에 촬영팀 모두가 다 같이 야반도주했어요.”(송인혁 감독)

촬영 전에는 원주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아마존에 들어갔지만, 문명을 접하고 점차 변해 가는 원주민들, 그리고 아마존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하면서 김진만 PD는 물론 촬영팀 전원은 때론 안타까움을, 때론 도시인으로서의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이 외에도 촬영팀을 위협했던 복병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아마존 벌레들의 습격. 특히 ‘삐융’이라고 불리는 벌레는 너무 작아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물리고 나면 피가 맺히고, 다음 날 죽음보다 더한 가려움의 고통을 안겨줬다. 결국 섭씨 45도가 넘는 날씨에도 긴팔, 긴 바지는 물론 마스크에 장갑까지 끼고서 중무장을 한 채 촬영에 임해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삐융의 공격은 피할 수가 없어서 가장 증세가 심했던 조연출은 촬영 도중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누구보다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그런 가려움을 참고서 묵묵하게 좋은 그림을 담아주신 촬영감독님들이죠. 일단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면 아무리 가려워도 움직여선 안 되니까, 도와줄 수 없는 저희로선 안타까웠을 뿐입니다.”(김진만 PD)

“카메라맨들은 촬영하고 있을 때 뭐랄까 접신했다고 하나요? 마치 신들린 것처럼 다른 것에는 신경을 안 쓰게 되거든요. 이상하게 카메라로 찍고 있을 땐 하나도 가렵지가 않았죠.”(송인혁 감독)

우거진 밀림 속을 날다시피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는 원주민들을 촬영할 때는 그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함께 달리기도 해야 했다. 낙오되면 그대로 밀림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또 독충과 독뱀, 악어가 우글거리는 밀림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도 힘든 일. 그 자체로 한 편의 생존 다큐멘터리였다.

장면 하나하나가 전부 인상 깊었던 ‘아마존의 눈물’. 그중에서도 촬영팀에게 큰 감동을 준 것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 삶을 유지하고 있는 조에족이었다. 그들은 집도 없이 나무에 해먹 하나만 매달은 채 생활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턱에는 ‘뽀뚜루’라는 큰 나무 장식을 끼고 살고, 다부다처제의 전통을 유지하며 낳은 아이는 2명 이상의 엄마와 아빠가 함께 키운다. 특이하게도 그들은 같은 조에족끼리만 결혼하기 때문에 혈액형이 모두 A형이라고 한다. 처음 접하는 도시인이 보기에 그들의 삶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처음 조에족을 만났을 땐 다들 벗고 다니니까 눈 둘 곳을 모르겠는 거예요. 게다가 조에족은 호기심도 많아서 우리를 관찰하는 걸 좋아했어요. 샤워하고 있는데도 거리낌 없이 들여다보고 있으니 처음엔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었는데, 2~3일 지나니까 제 눈에 그 사람들의 모습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더라고요.”

미션 no.3 원시인들의 삶에 점점 동화되다

조에족의 일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을 나누는 것. 사냥에 성공한 사람은 사냥에 실패한 모든 조에족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식량을 나눠준다. 그래서 식량을 나누는 일은 조에족의 일상을 통틀어 가장 신중하게, 그리고 가장 긴 시간 동안 진행된다.

“고기를 배분하는 조에족을 촬영하는 데 꼬박 2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바라보고 있는 우리가 속이 터지더라고요. 하지만 자기가 힘들게 사냥한 것을 아무 대가 없이 공평하게 타인에게 나눠주고, 그 분배를 위해 오랜 시간 공들여 신중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조에족은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사냥을 하지 않는다. 화가 난 사람이 있으면 간지럼을 태워서 화를 풀어준다. 자연과 동화되어 느리게 천천히 살아가는 조에족의 삶은 곁에서 지켜본 촬영팀뿐만 아니라 TV를 시청하는 모든 사람에게까지 큰 감동을 전해 줬다.

하지만 조에족과 같이 자연 그대로의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원시족들은 아마존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다. 풍부한 천연 자원의 보고인 아마존으로 문명인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고, 그 문명은 아마존의 사람들과 자연을 점점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도시로부터 공수한 총을 사용하고 있고, 총을 사용하면서부터 사냥해서 먹을 수 있는 동물의 개체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로 인해 뭐든지 함께 나눠 먹던 문화는 이제 자신의 가족끼리만 먹는 문화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중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다. 바로 무시무시한 전염병. 질병에 대한 면역력이 전혀 없는 원주민들은 도시인들과 접촉하고 나서 가벼운 감기 증세로 전 부족 중 3분의 1이 죽는 참사가 일어났고, 지금은 간염이 무섭게 번지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은 문명의 유입을 거부할 수 없다. 이제 하루 정도 걸려 강을 건너면 바로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도시 문명이 자리 잡고 있고, 문명의 편리함과 화려함은 거부하기엔 너무 큰 유혹이기 때문이다.

“아마 10년 뒤쯤에 다시 한 번 촬영을 가면 아마존이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 같아요. 헬기를 타고 아마존 전경을 찍은 장면을 보면 어느 순간 밀림이 재로 변해 가는 구간이 나와요. 소 농장을 만들려고 밀림을 없애는 현장이죠. 이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애써 강조해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다큐멘터리의 원래 제목은 ‘2009 아마존의 기록’이었지만, ‘지구의 허파’ 아마존이 인간의 탐욕으로 울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아마존의 눈물’로 바꿨다고 한다. 이런 제작진의 마음을 대변해서 시청자들에게 아마존의 현실을 느끼게 하는 데 크게 한몫한 사람은 내레이션을 담당해 화제가 됐던 배우 김남길. 평소 다큐멘터리를 좋아해 흔쾌히 내레이션을 맡아준 김남길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시청자들에게 촬영팀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었다.

에필로그를 포함한 총 5편의 다큐멘터리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은 ‘아마존의 눈물’. 놀라운 성과를 거뒀지만 김진만 PD는 아직도 아쉬움이 너무 많다. TV의 매체 특성상 보여줄 수 없었던 잔인한 장면들과 부득의하게 모자이크로 처리해야 했던 원주민들의 벗은 몸은 100% 아마존의 삶을 제대로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김 PD는 3월 말 미공개 동영상을 포함한 ‘아마존의 눈물’의 영화 버전을 극장에 개봉할 예정이다.

그것만으로도 바쁠 두 사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 계획을 물었더니 “남극을 갑니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MBC 지구 환경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편이 될 ‘남극의 눈물’을 촬영하기 위해 벌써 오래전부터 기획을 했고, 늦어도 올해 4월이나 5월쯤 남극으로 떠나게 될 것이라는 김진만 PD. 그는 지금 송인혁 촬영감독과 함께 떠나고 싶어서 극구 사양하고 있는 송 감독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내년 이맘때쯤 다시 그들을 만나 남극 이야기를 듣고 있을 모습이 상상됐다.

기획_박진영 기자 취재_윤미영(프리랜서) 사진_이민희(studio lamp), 김진만 PD 제공

여성중앙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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