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 프리즘] 안락사보다 호스피스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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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최근 네덜란드에서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에서 실시된 몇 군데 여론조사에서도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누구도 가망이 없는 시한부 환자에게 고통을 강요할 수 없으며 환자는 위엄있는 죽음을 맞이할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안락사 허용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안락사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안락사의 개념 자체를 혼동해선 안된다. 안락사란 독물이나 기계 등 적극적인 수단을 동원해 생명을 빼앗는 행위다.

따라서 식물인간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거나 말기암 환자를 강제로 퇴원시키는 것은 안락사가 아니다.

안락사가 허용되면 극빈자 등 사회적 약자부터 희생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가족들에게 경제적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자의반타의반 안락사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 점에서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는 사형수를 미연에 막기 위해서라도 사형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사형제도 반대론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안락사의 허용보다 호스피스의 확산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호스피스를 송장 치르는 곳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호스피스는 인위적으로 환자의 생명을 빼앗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호스피스는 불필요한 의료행위를 일절 중지하고 단지 마약주사 등을 통해 육체적인 고통을 덜어주는 자비로운 의료행위다.

지금도 의료현장에선 단지 몇 개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미명 하에 환자에게 또 한번의 고통을 가하는 치료가 행해지고 있다.

자궁경부암 환자에게 시술되는 골반 전체를 들어내는 수술이 대표적 사례다.

환자는 시술 후 요도와 항문.성기가 한꺼번에 없어진다. 그러나 그 대가는 1%도 기약할 수 없는 몇 개월의 생명연장이다. 성급한 안락사 논쟁보다 호스피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홍혜걸 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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