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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서울서 산골학교로 전학시킨 김우석씨 부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강원도 설악산 자락에 있는 오색초등학교. 전교생 28명의 자그마한 이 학교 학부모 중에 특이한 주말부부가 있다.

토요일 오후면 서울에서 내려오는 남편 김우석(43)씨와 이 곳에서 두 아이를 뒷바라지하고 있는 아내 우성숙(39)씨가 바로 그 부부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은 짬이 없어요. 학교가 파해도 밤 늦도록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전전하지요. 그런 답답한 환경에서 우리 단희(초5)와 남호(초3)가 시달리는 게 안스러워 이 곳으로 옮겨왔어요. " 우씨의 설명이다.

남편이 거든다. "도시의 학부모들은 너무 조바심을 냅니다. 내 자식만 뛰어나면 된다는 식이지요. 아이들이 정을 나눌 틈조차 주질 않아요. 초등학교 시절은 더불어 사는 삶을 배워야 합니다."

우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전학한 것은 지난 4월. 도시 학부모들 사이에 한창 조기유학붐이 불 때다.

이런 와중에 이들은 서울에서 이곳으로 오히려 '역(逆)유학' 을 택했다. 다니던 학교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다. 단희와 남호가 그 곳 생활에 적응을 못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서울 사람들이 흔히 '없어서 못 보낸다' 는 유명 사립초등학교에서 두 아이 모두 충실히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 단지 획일적인 학교 교과과정과 학부모들의 과당경쟁에 거부감을 느껴 자유롭게 놀면서 공부할 수 있는 학교로 옮기려고 오래 전부터 계획해왔던 일을 실행한 것뿐이란다.

그러다 보니 부부가 평상시에 틈틈이 '역유학' 을 준비했다.

'학교공부가 전부는 아니다' 란 생각에 학교수업을 며칠씩 빠지더라도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다니기도 하고 자유로운 시골학교를 골라 일주일씩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이곳으로 전학하기 전에 한 달간 학교를 안 보내고 서울에 있는 집 근처 북한산.도봉산으로 놀러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단희와 남호가 무척 좋아했어요. 다른 아이들은 물론 부러워했지요. 학교수업을 빼먹고 놀러다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살아있는 교육을 받는 거지요. " 엄마 우씨의 주장이다.

"두 아이가 마음 편하게 즐거워할 수 있는 건 부모가 흔들리지 않기 때문" 이라고 덧붙인다.

아빠 김씨는 "우리도 대학을 마칠 때까지 학교를 안가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며 "그러나 정작 사회생활을 할 때 학교공부가 도움을 주더냐" 고 반문한다.

남편이 출퇴근할 수 있는 서울 근교에서도 원하는 학교를 찾을 수 있었을텐데 이처럼 먼 곳을 택해 주말 부부를 자초한 까닭은 간단했다.

우씨가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단희의 담임선생님이 마음에 들어서란다.

"아이들에 대한 교육관이 저희와 딱 맞아 떨어졌어요. 어릴 적엔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부터 배워야 한다는 점, 그래야 아이들이 거짓없는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생각이 일치한거죠. "

주중에 남편 김씨는 서울집에서 홀로 생활하며 식사.청소.세탁 등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다. 우씨는 집밖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불편이란 건 생각하기 나름이란다.

김씨는 "혼자 일에 열중할 수 있어 좋다" 고 말하고, 아내 우씨는 "깜깜함 밤에 두 아들과 화장실에서 노래부르는 즐거움은 아무도 모를 것" 이라고 뽐낸다.

학교에서 돌아온 남호는 가끔 서울친구들이 보고 싶지만 선생님.친구들과 용돈을 모아 산 병아리를 기르는 이곳 생활이 너무 즐겁단다.

단희는 컴퓨터 게임보다 설악산을 뒷동산 삼아 친구들과 산속으로 뛰어다니며 노는 것이 더욱 좋단다.

'빼빼로 데이에 교장선생님.동철선생님.아이들과 빼빼로를 나눠 먹었다. 빼빼로가 없다고 명준이가 오징어를 줬다. (11월 11일)'

'우리 밭을 놀이터로 만든단다. 그래서 애들이랑 무를 먹었는데 달았다. 방귀를 세 번이나 꿨다. 내년에는 어디서 무를 뽑아먹어 보나! (11월 16일)'

단희와 남호의 글에 이곳에서 배운 '사람 사는 냄새' 가 가득 배어 있다.

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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