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돈세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중국 삼국시대 조조(曹操)에 대한 인물평이 정사(正史)와 소설을 넘나들며 엇갈린 건 익히 알려진 얘기다. 최근에도 중국에선 조조의 재평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한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소설만 놓고 봐도 그렇다. 이문열의 『삼국지』 속 조조는 전사(戰死)한 군인의 가족에게 ‘밭’을 줘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한 훌륭한 지도자다. 반면 김찬명의 『삼국지』엔 조조를 ‘돈세탁’하는 불량 지도자로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비자금을 챙겨 친인척 명의의 돈이나 부동산으로 숨겼다는 거다.

조조의 돈세탁은 허구일 터다. 그럼에도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건 돈세탁의 오명을 남긴 현실 속 국가 지도자가 수두룩해서다. 독재자 피노체트 전 칠레 대통령은 미국 내 5개 은행에 100개 넘는 계좌를 개설해 1500만 달러를 돈세탁했다. 25년간 그의 계좌 28개를 관리한 워싱턴의 리그스은행 고객 카드에 적힌 피노체트에 대한 기록은 이렇다. ‘전문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둔 뒤 은퇴에 대비해 평생 정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아온 은퇴한 전문가’.

한국에서도 몇몇 전직 대통령이 돈세탁 연루로 곤욕을 치렀다. 돈세탁이란 용어가 1990년대 들어와 자릴 잡는 데 이들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건 아이러니다. 비자금 문제로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자 언론과 검찰 수사기록에 돈세탁이란 말이 자주 등장했다. 당연히 신조어로 대접받아 국어사전에도 등록됐다.

돈세탁의 영어 어원은 ‘money laundering’이다. 1920년대 알 카포네와 같은 조직범죄자들이 도박이나 주류 판매를 통해 얻은 불법 수익금을 합법 자금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속어로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더러운 돈’을 이탈리아인 세탁소를 통해 합법화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설도 있다. 더러운 때를 없앤다는 세탁의 긍정적 의미가 돈과 엮이면서 더럽혀진 셈이다.

대만의 유관청이란 사업가가 더러운 지폐를 깨끗하게 세탁해 주는 ‘돈세탁’ 서비스를 내놨다는 소식이다. 말 그대로 진짜 세탁(洗濯)이다. 중국 설인 춘절에 부모가 깨끗한 새 돈을 자녀에게 주며 복을 기원하는 풍속에 착안했다고 한다. 나흘 뒤면 우리도 설이다. 마음을 담아 건넬 세뱃돈, 은행에서 갓 찾은 새 지폐나 ‘돈세탁’한 깨끗한 지폐면 금상첨화(錦上添花)일 게다. 그러나 아니면 또 어떤가. 열심히 일해 번 돈이면 그보다 ‘깨끗한 돈’은 없을 테니까.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