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방 장병들 위생 걱정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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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권오경(맨 왼쪽)·김선형(맨 오른쪽) 부부가 전방 소초 부대에 설치된 정수기를 점검하러 갔다가 장병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최전방 소초 부대에 정수기와 비데가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는 분이 많아요.”

경기도 연천·포천 일대에 밀집한 군부대의 정수기·비데 관리를 맡고 있는 김선형(47)씨와 남편 권오경(50) 씨. 전방 장병의 마실 물과 ‘위생’을 책임진 이색 커플이다. 김씨는 “갓 배치받은 신병들뿐 아니라 면회 온 부모님들도 정수기는 물론 비데와 공기청정기까지 갖춘 내무반을 보면 아주 만족스러워한다.”라고 말했다.

이 부부가 관리하는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 등은 800여 개. 주기적으로 점검과 필터·부품교환을 하고 고장 때는 긴급 출동해야 한다. 가는 곳이 대부분 민간인 통제선 북쪽의 최전방 지역이다. 김씨는 “정수기 2대를 점검하려 휴전선 소초까지 2~3시간 험한 산길을 걸어 올라야 하는 때도 적지않다.”라고 말했다.

폭설 때문에 산속 부대에 사흘간 고립되기도 했고, 한밤 중에 길을 잃은 적도 있다. 하지만, 병사들이 “깨끗한 물을 먹게 해줘 고맙다”고 말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남편 권씨는 “지하수를 끓여먹던 장병에게 정수기는 사기를 올려주는 일등공신”이라며 “내가 군 복무할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전방 병사들에게 정수기는 물론 비데도 필수품이 됐다고 한다.

연천에 사는 김씨는 2008년 7월 정수기·비데 업체인 웅진코웨이의 제품 관리사 일을 시작했다. 지역 특성상 군부대를 도맡게 됐다. 가끔 일을 돕던 남편 권 씨도 지난해 9월 뛰어들었다. 같은 일을 하는 1만2000명의 직원 중 부부가 함께 군부대를 전담하는 경우는 이들뿐이다.

담당 지역이 사단급 부대만 5개일 정도로 넓어 장병과 만나는 게 일과가 됐다. 그러다 보니 병사들이 군생활 고민을 상담해 올 정도로 허물없이 지내게 됐다고 한다. 험한 여건에서도 성실히 맡은 일을 해온 이들은 지난달 ‘2010년도 웅진코웨이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이 부부는 다음달 아들을 군에 보낸다. 김씨는 “요즘 부대에서 만나는 병사들이 모두 아들처럼 느껴져 가슴이 뭉클할 때가 많다”며 “내 아들을 챙기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더 꼼꼼하게 정수기와 비데를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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