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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환율 급락… 정부 나섰다 거액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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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환시장에서 이상 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중순 무렵이다. 4월 초 달러당 1250원대까지 갔던 원.달러 환율이 열흘 만에 1200원대로 떨어졌다.

당시 한국 경제는 환율 급락의 충격을 너끈히 받아낼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북핵 문제와 정책 혼선 등으로 민간연구소에선 "이대로 두면 3% 성장도 힘들다"는 우려가 나왔다.

정부는 시장에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당시 김진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규모가 작아서 투기세력이 개입할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환율 변동의 요인을 경제여건보다 투기세력 쪽에 두고 있었다. 환율이 떨어지면 내수가 무너진 마당에 경제의 버팀목 역할을 하던 수출이 위축될 것이란 절박함도 정부가 환율 방어에 나선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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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시장은 냉정했다. 고수익을 좇는 국제자금이 기준 금리가 1%대였던 미국 시장을 벗어나 한국 등 아시아 시장으로 밀려들었다.

정부는 연초에 배정됐던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 한도 5조원을 7월에 거의 다 소진하고 추가로 5조원을 더 발행하기로 했다.

시장 개입 폭이 커지자 이번엔 미국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은 중국.일본.한국 등에 대해 환율조작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9월 두바이에서 열린 서방선진 7개국(G7) 재무장관 회담이었다. 재무장관들은 변동환율제를 옹호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1차적으로는 중국의 고정 환율제를 겨냥한 것이고, 다음으로는 일본 등 아시아 국가를 염두에 둔 경고였다. 시장은 이를 선진국들이 세계적으로 달러 약세를 용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원.달러 시장에서 달러 매물이 쏟아지면서 환율은 시장에서 정부 방어선으로 여겨지던 1150원 아래로 하락했다.

그러나 정부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 무렵에 NDF 등에 대한 투자가 집중적으로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했다. 11월 중순 무렵 환율은 1120원대에 다시 근접했다. 최중경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은 "투기세력에 정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1월 국내은행이 역외선물환을 많이 살 수 없도록 제한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 같은 초강수 조치와 든든한 외환보유액에 힘입어 올 들어서는 환율이 급변하는 경우가 줄었다.

그러나 정부는 환율 전쟁을 치르면서 상당한 손실을 보았다. 환율을 방어한다는 것 자체가 시장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개입하게 되면 손실이 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파생상품 시장에서 투기세력이 움직였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고, 자금이 제한된 상황에서 파생상품 거래는 환율 방어에 효율적이라는 게 정부의 기본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부가) 시장 개입을 안 했으면 경제가 더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근본적으로 정부가 과도한 개입을 하는 바람에 필요 이상의 비용을 썼다는 지적도 있다. 서강대 임준환 교수는 "지난해 말 환율 움직임은 일시적 유동성 문제라기보다 전 세계에 걸친 구조적 문제였기 때문에 현물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 더 적절했다"고 말했다.

정경민.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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