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스타일] 드라마 작가 노희경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TV드라마인 '거짓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바보같은 사랑' 등을 통해 매니어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드라마 작가 노희경(34)씨. 사람들을 TV 앞에 끌어 모으고, 그들을 금세 '울보' 로 만들어버리는 그에게는 '제2의 김수현' 이라는 찬사가 붙어다닌다.

인생의 달고 쓴 맛을 섬세하게 담아내는 솜씨를 보아서는 나이가 사십줄은 족히 넘어섰을 거라고 짐작하기 쉽지만, 막상 그를 만난 사람들은 소년같은 그의 용모에 놀라곤 한다.

짧게 자른 머리, 자그마한 체구. 검정 울 스웨터에 검정바지, 옅은 카키색 목도리와 갈색 가죽 재킷차림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취향을 그대로 보여준다.

드라마도 그렇다. 그는 "유행 좇고, '조미료' 뿌린 작품은 쓰지 않겠다" 고 말한 적이 있다. 간결하고 솔직한 것을 좋아하는 그의 스타일은 일상에서도 마찬가지. 친구들이 '홍제동 콘도' (최소한도로 필요한 물건만 있기 때문에)라 놀리듯이 부르는 집도 번잡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물건에 대한 집착도 없는 편이다. "선물을 받아도 곧잘 잃어버려서 아예 물건이 생기는 게 무섭다" 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런 그가 이사를 다닐 때마다 챙겨다니는 물건이 있다. 어머니가 운명할 당시 손에 끼고 있던 용무늬 칠보 반지, 20대에 문학적 열정을 함께 나눈 독서감상 일기장, 밑줄 그으며 닳도록 보았던 책 '보들레르' , 그리고 5공화국 출범과 올림픽게임 기념주화. 값나갈 물건은 하나도 없다.

그의 드라마에 나오는 소박한 등장 인물이나 사랑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분위기다. 생뚱같은 기념주화만 아니라면.

"이 동전이요?1981, 82년에 발행된 거예요. 친구 어머니께서 나중에 큰 돈이 될 수 있다면서 주신 거죠. 데뷔 전 '돈이 씨가 말랐던' 시절, 이걸 현금으로 바꾸고 싶어 은행을 찾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단 1원도 안올랐더군요. 그때 얼마나 서운했는지 말로 다 설명 못해요. "

동전 두 닢은 그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궁핍했던 시간에 대한 기억, 그때 자신을 짓눌렀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 딸과 그 친구까지 배려했던 어머니 마음, 정부에 대한 분노, 그리고 안쓰러워하던 은행원의 표정까지. 그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 사람을 읽고, 삶의 다양한 무늬를 발견할 줄 안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슬프지만 아름답고, 애틋한 그의 드라마를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이은주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