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일관계가 우려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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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전문가들 사이에는 지금 우리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치켜세우기(오모네리)' 와 '경멸(아나도리)' 움직임 사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일본의 한국 치켜세우기란 말할 필요도 없이 평화적인 정권교체와 IMF위기 극복, 그리고 현란하게 전개되고 있는 남북관계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시기심(?)과 비위 맞추기를 의미한다.

이에 반해 한국 경멸이란 재일동포의 제3국인 취급, 역사 수정주의적 일본의 교과서 개정움직임, 그리고 한국의 강탈적(?)월드컵 공동개최에 대한 일본 여론의 불쾌감 등을 의미하고 있다.

물론 일본의 한국 치켜세우기와 경멸의 순환적 움직임은 어제 오늘의 현상이 아니다. 1992년 '문민정부' 의 등장과 빌 클린턴-김영삼-호소카와 모리히로로 이어지는 세계사적 정치 변화의 흐름을 타고 한.일관계는 일본의 한국 치켜세우기 속에 순항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일 국교 30주년이 되는 95년에는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한국 경멸로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등 한.일관계가 82년 교과서 파동 이후 최악의 상태로 후퇴했었다.

97년 김대중(金大中)정부 등장 이후에도 유사한 패턴이 되풀이 되고 있다. 金대통령의 '전향적인' 과거사 청산과 문화개방으로 유발된 일본의 한국 치켜세우기와 이에 따른 한.일관계의 밀월시대가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역사교과서 개정문제와 같은 일본의 뿌리깊은 한국 경멸정책에 의해 다시 암초에 부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 등장 전 까지만 하더라도 역사문제로 야기된 한.일관계의 파국현상은 '냉전적 유대관계' 를 통해 일본의 양보를 이끌어 내는 선에서 수시로 봉합될 수 있었다.

하지만 냉전적 유대관계가 해체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역사문제가 선동적인 정치가들의 조직적인 여론조작에 의해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달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역사문제에 대한 전향적 해결을 주장하는 언론인들이 곤란을 겪고 있다는 보도나 역사왜곡 문제를 지적한 외교관이 집단적인 '이지메' (괴롭힘)를 당하고 있다는 일본발 뉴스는 일본은 물론 우리에게도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월포렌의 지적처럼 이러한 움직임은 일본 국내정치의 방향타 상실과 맞물려 아시아의 평화는 물론 일본의 민주주의에 적신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상룡(崔相龍)주일대사도 보다 못해 "역사는 모래 위에 쓴 글씨처럼 쉽게 지울 수 없다" 고 우려를 표명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일본서도 이러한 우익의 움직임에 대한 견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65년에 시작돼 97년에 결판이 난 32년에 걸친 '이에나가(家永)교과서 소송' 은 그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에나가 사부로 교수가 '교과서 검정제도는 위헌' 이라고 낸 소송에서 일본 최고재판소는 그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난징(南京)대학살을 포함한 네군데의 문부성 검정을 위법이라고 판시함으로써 종군위안부 문제를 위시한 현대사 기술문제에 미흡하나마 얼마간의 진전이 이뤄지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우려를 자아내는 것은 이러한 흐름이 제대로 자리를 잡기도 전에 일부 우익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어나던 역사 수정주의 움직임이 작금에는 집권 자민당은 물론 야당 의원들까지 가세한 정치적 연대 움직임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다 지금 일본에는 이런 움직임에 제동을 걸 견제장치가 하나씩 허물어지고 있을뿐 아니라 이를 추스를만한 정치적 리더십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스토킨 교수는 6백여명에 달하는 일본 국회의원 중 해외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단 7명뿐인 일본 국회는 지극히 민족주의적 편협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대일 햇볕정책' 이 이들 세력의 움직임에 합법적인 공간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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